Column

음악의 피카소

최근 가수 서태지가 컴백했다. 개인적으로 광팬은 아니지만, 이번에 컴백하며 발표한 그의 곡들을 들으면서 ‘역시 서태지’라는 생각을 했다. 1991년 발표된 데뷔곡 <난 알아요>는 24년이 지난 지금 들어봐도 촌스럽다거나 철지난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가’라는 생각을 확인시킨다. 그는 대중의 구미에 적당히 맞춰가는 음악이 아닌, 자기가 구축한 음악세계를 소개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탁월한 역량을 가졌다. 그의 혁명에 대중은 항상 뜨겁게 응답했고, 다른 음악가들로 하여금 수많은 새로운 시도들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보다 한 세대쯤 앞선 시기에는 조용필이 있다. 가수로서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지만, 작곡가로서 그의 존재는 서태지를 뛰어넘는 인물이다. 그가 발표했던 <단발머리>를 기억하는가? 노래 중간 중간에 사용된 ‘통통통’하며 튀는 전자음은 놀라운 혁신과도 같았다. 이 곡이 발표되었던 당시 유행했던 곡들과 비교하면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시도하지 않았던 악기를 사용했고 그가 주도했던 밴드는 완벽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오차가 없었다. <여행을 떠나요>같은 곡에서부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허공>과 같은 트로트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완벽하게 섭렵했다.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끝이 없어 보인다.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이 ‘우리 시대의 슈베르트’라고 말했던 가수가 있다. 대중음악을 클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이들의 공헌이라고 극찬했으며 그 혁신성과 창조성은 피카소에 비견되기까지 했다. 이들은 대중음악의 대부분의 장르를 탄생, 발전시키고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들이 발표한 어떤 앨범에는 록, 팝, 하드록, 발라드, 블루스, 포크, 재즈, 컨트리, 펑크, 헤미메탈 등을 포함한 15가지 다른 장르의 곡들을 담아냈다. 그들이 활동했던 8년의 기간 동안 총 음반 판매량은 16억장에 달하고, 미국과 영국의 주요 차트 1위에 20곡이나 올라갔다. 그 주인공은 바로 비틀즈다.

대중음악의 창세기로 불리는 천하의 비틀즈도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던 엡스타인이 비틀즈의 내공을 알아차리고 매니저를 자청했다. 그가 생각했던 중요한 일은 음반을 내는 것이었기에 때문에 런던까지 날아가 주요 음반사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러다 굴지의 음반회사인 “데카”의 오디션을 치루기로 했는데, 런던으로 가는 도중 길을 잃어 약속보다 10시간이나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천신만고 끝에 프로듀서에게 윗돈을 얹어주고 녹음을 하게 되었지만, 데카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밴드라는 이유로 비틀즈를 탈락시켰다. 

혁명적이라고 했던 서태지의 음악 역시 호불호가 갈린다. 그의 음악이 시끄럽게만 들려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의 협주곡 역시 지금은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작품이지만, 작곡 당시만 하더라도 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너무 어려워서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초연에서도 청중들의 혹평을 받았다.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은 작품 내내 흐르는 강렬한 긴장감, 그리고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은 불협화음, 게다가 1악장의 길이만 하더라도 웬만한 작품의 전체 길이와 맞먹을 정도로 길다. 곡 전체 길이도 50분이나 되다보니 이런 장대한 스타일의 파격적 음악에 익숙하지 않았던 당시 청중들의 평가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영웅> 교향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클래식 애호가들의 기본 레퍼토리이다.

베토벤은 자기 자신이 예술적 영감의 정점에 오르기도 전에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합창>의 초연 당시, 자신이 지휘했던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이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지만, 정작 베토벤은 그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독창자 한 명이 그의 옷자락을 끌어당겨 열광하는 청중쪽으로 몸을 돌리게 해 인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합창>교향곡은 베토벤이 구상부터 완성하는데까지 30여 년의 시간이 걸린 작품이다. 교향곡 편성에 합창을 넣는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시도였다. 이후 멘델스존과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에 합창을 포함시킴으로 베토벤이 꽂은 깃발 덕을 보게 되었다. 편성도 편성이지만 70분이라는 연주 시간 역시 대단한 파격이었다. 그는 종종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패턴에서 벗어나 경우에 따라 7악장, 혹은 2악장짜리 곡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외형적인 파격과 더불어 악곡 자체에서 발견되는 복잡성과 모호함은 진보의 산물이다. 음악학자들이 베토벤을 시대를 연결하는 고리라고 이름하는 이유는 바로 모짜르트와 하이든으로 대표되는 고전파 작곡가들이 이어온 전통을 과감하고 발전적으로 완성시켜 낭만파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최근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메카트니의 내한 공연이 건강문제로 취소되자 많은 팬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설적인 혁신가의 무대를 실제로 마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볼 수 있는 기대가 무너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선구자의 업적이 위대한 이유는 그 파격의 산물이 곧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베토벤이나 차이코프스키 뿐만 아니라, 조용필이나 서태지처럼 시대를 꿰뚫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음악의 피카소들이 있다. 이들이 만들어낸 창조와 모험의 길은 살아있는 생명력을 품고 흘러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