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교학상장(敎學相長)

지휘자 제러드 슈바르츠(Gerard Schwarz)와 음악 교육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다. 그는 20대는 뉴욕 필하모닉의 수석 트럼펫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던 음악가였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그의 아들은 촉망받는 첼리스트로 이미 세계 주요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의사셨던 아버지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신 어머니의 뜻을 따라 슈바르츠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트럼펫을 배웠다. 악기를 통한 음악수업 뿐만 아니라 매 주말 뉴욕 필 음악회를 보고 들으며 그의 꿈은 “뉴욕 필하모닉의 수석 트럼펫 주자”가 되었다. 어린 슈바르츠에게 무대는 늘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외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그의 딸은 어린시절부터 플루트를 배웠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환자에 매달려야해서 아버지의 음악회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녀의 두 아이들에게는 피아노와 트럼펫을 가르친다. 세월이 지나서 지금보다 여유있는 인생의 시기가 온다면 그녀는 다시 중요한 관객으로 돌아올 것이고, 이런 사람들의 후원을 통해서 그 다음 세대들이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슈바르츠는 덧붙였다.

카네기홀(C), 줄리어드 음대(J), 와일 인스티튜트(W), 그리고 뉴욕시 교육부와 파트너 관계로 운영되는 아카데미(A)인 ACJW앙상블은 음대를 졸업한 유망한 연주자들을 선발해서 다양한 형태의 연주 기회를 2년 간 제공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이다. 음악회 뿐만아니라 뉴욕 인근의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직접 악기를 가르치거나 이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것이 펠로우들의 주된 임무이다. ACJW탄생의 산파 역할을 맡았던 카네기홀 예술감독 클라이브 길린슨(Clive Gillinson)에 의하면 2005년 당시, 미국에는 매년 1만 5천명의 음악 전공자가 배출되었지만, 오케스트라에는 150명을 위한 자리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분명 숨막히는 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기회로 생각했다. 대학을 막 졸업하는 젊고 뛰어난 재원들이 청중이 바라고 사회가 요구하는 음악가의 표본으로 자라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비교적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다. 비록 ACJW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학교를 막 졸업하는 재능있는 음악가들을 위해 연주와 교육을 접목한 인큐베이팅을 제공한다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고 지난 10년 동안 이들이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해 나가고 있음을 성공적으로 증명했다. 

클래식 음악의 어두운 미래를 말할 때 주로 콘서트의 빈 객석을 예로 든다. 중소 연주단체는 말할 것도 없고 뉴욕 필이나 메트 오페라 역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메트 오페라의 티켓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만큼 인기를 끌었고 객석은 청중들로 꽉 들어찼다. 그러나 올 시즌 메트의 유료관객 점유율은 66%에 불과했다. 시즌 패키지를 구입하던 충성도 있는 관객들에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이다. 피터 겔브(Peter Gelb) 메트 오페라 단장은 새로운 관객이 생겨날 시간조차 없이 기존 관객들이 노령화 됨에 따라 세상을 떠나면서 관객이 감소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저명한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는 최근 그의 칼럼을 통해 관객의 연령대가 연로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천정부지로 올라간 티켓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젊은 층은 결과적으로 소외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내년시즌 첫 공연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가장 싼” 티켓 가격이 자그마치 268달러에 달했다. 경제활동에 한계가 있는 학생들이나 젊은 층에게는 엄두도 못낼 수준이다. 메트 오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면에 다음 세대 관객을 끌어안고 있지 못하다는 답답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경 중 하나인 ‘예기(禮記)’의 제 18편 학기(學記)에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가르침이 있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통해 함께 자라난다는 뜻이다. 어린 자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친숙하게 하고, 재능있는 젊은 연주자들에게는 필요한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해 주며, 클래식 공연 문화에 흡수될 수 있도록 다음 세대를 배려하는 전략적인 접근이 절실하다. 가르침 속에 배움이 있고 배움 속에 가르침이 있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없다면 그 누구도 성숙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