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예술의 또 다른 이름, 메세나

로마 제국 아우구스트 황제의 통치 시절의 정치관료이자 시인이었던 가이우스 마이케나스(Gaius Maecenas)는 당시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로마 제국이 예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했던 인물이었다. 마이케나스의 예술 창작 후원이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과 같은 인물이 예술 혼을 불태울 수 있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기업의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메세나(Mecenat)는 바로 마이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최근에는 예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장학사업, 기술연구, 체육, 그리고 여러 가지 공공사업에 대한 지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몇 년 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렸던 신라 특별전, 'Silla, Korea's Golden Kingdom'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해외 반출을 최대한 피한다는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비롯한 수많은 신라 유물들이 뉴욕의 세계인들에게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이는 한 대기업의 문화지원, 즉 메세나에 의해 성사될 수 있었다. 

예술이라는 분야는 이윤을 창출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명맥을 이어나갈 수 없다. 하이든은 왕실의 도움으로, 바하는 교회의 지원으로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었고, 이들을 도왔던 후원의 손길 덕택에 오늘날 남겨져 있는 예술적 소산들을 후세들이 누리고 있음을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 환경이 열악한 예술가들에게는 기업의 메세나 운동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구조를 악용하는 일부 몰지각한 후원자들도 존재한다.  

음악회에 지각한 '높으신 분'을 환영하기 위해 공연 도중 조명을 밝히며 요란을 떨기도 하고, 자신이 마치 대단한 전문가라도 되는듯 얄팍한 지식으로 작가의 면전에서 호통을 치며 꾸중을 즐긴다는 몰지각한 후원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생일에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괘씸죄에 걸려 일방적으로 후원을 끊어버렸다는 기업인도 있고, 한 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던 연주자가 그 기업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던 것이 발단이 돼 형사 사건으로까지 넘어갔던 씁쓸한 소식까지 참 다양하다. 

몇 년 전 한 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반주를 맡았던 피아니스트는 학부과정에서 공부하던 대학생이었다. 당시 그 재단의 대표이자 손꼽히는 대기업의 총수였던 A가 음악회 직전 연주자 대기실을 찾았다. 그리고는 20대 초반이었던 새내기 피아니스트에게 다가가 "오늘 저녁 음악회,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불편하신 점 있으시면 무엇이든지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하고 조용히 방을 떠났다. 그 음악회는 두 명의 대학생이 마련한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음악회였다. 반면 A회장은 저명한 음악가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 수시로 음악회를 여는 것으로 잘 알려진 지독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다. A회장 정도라면 무명의 새내기 대학생이 연주하는 음악회에 방문해 등 두드려주는 격려만으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지금은 어엿한 전문 연주자로 성장한 그 피아니스트는 당시 A회장이 자신에게 보였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비행기 안에서 땅콩 한 봉지와 라면 한 그릇으로 생난리를 쳤던 대기업 임원과는 다른 차원의 파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메세나는 순수하고 이타적인 목적으로 문화를 지원하는 것이다. 예술가와 그들의 환경을 지원하고 활성화 되는 것으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장 순수한 차원에서의 메세나라고 할 수 있다. 메세나를 표방하는 기업들의 이미지 재고는 덤이다. A회장처럼 인간 존엄을 기초로 하는 예술에 대한 진지하고도 깊은 사랑과 인류애가 전제될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