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박수에 대한 소고

지난 8월, 링컨센터 데이빗 게펜홀에서 콘서트가 열렸다. 독특한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동시에 피아노 독주자로도 무대를 장악했던 연주가 끝나자 장내는 열광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많은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야말로 원맨쇼를 펼진 제프리 칸(Jeffrey Kahane)에게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그가 무대로 다시 나와 인사를 하고 백스테이지로 걸어 들어가기를 두 번, 관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박수를 거둬들였다. 조금만 더 박수를 치면 앵콜을 할 법도 싶었는데…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꼽히던 호세 카레라스가 1993년 한국을 찾아 당시 4200석 규모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오케스트라 반주가 아닌 피아니스트를 동반한 연주였는데 역사에 남을만한 명연을 펼쳤다. 백혈병을 극복하고 무대로 돌아온 영웅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이어졌고, 그는 이를 받아들여 앵콜로 화답했다. 그리고 ‘누가 이기나 보자!’식의 경쟁은 시작되었다. 카레라스는 수 천 관객이 빠져나간 후 몇 백명 정도만 무대쪽으로 모여들 때까지 대단한 앵콜 행진을 이어갔다. 올해 초에 있었던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리사이틀에도 총 10곡의 앵콜이 연주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청중들의 박수에 못이겨 신청곡을 즉흥으로 받아서 연주하는 묘기까지 부리면서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을 더 연주한 셈이다.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클래식 콘서트에서는 연주자가 연주를 마치면 인사하고 무대를 오가는 동안 충분히 갈채를 보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주에 감동이 크다면 박수는 길어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표하기도 한다. 연주자가 짧은 앵콜을 연주하기도 하지만, 연주곡목이 대곡이었거나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곡이라면 앵콜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은 각 나라별 청중들의 성향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인터뷰에서 런던의 관객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웬만한 연주로는 런던 사람들의 호응을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단 박수가 시작되면 묵직하고 오래 간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사람들은 진짜를 알아본다는 의미이다. 

몇몇 대도시의 관객들은 박수에 후하지 않다. 억울하게 한 대 얻어 맞았는데 꾹 참고 견디는 사람처럼 양손을 주머니에 꽂고 퉁명스럽게 바라만 보는 조용한 관객들을 만나는 것은 연주자의 입장에서 반가울리 없다. 그렇지만 이길보라가 쓴 <반짝이는 박수소리>에서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농인들이 어떻게 박수갈채를 보내는지를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손바닥을 반복적으로 부딪쳐 나는 소리로 박수를 하는 반면 농인들은 손바닥을 편 양 팔을 들어 반짝반짝 좌우로 돌리며 시각적으로 박수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청각이 아닌 시각으로 박수를 하기 때문에 반짝이는 손의 움직임들이 모여 예의를 표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하나의 반짝이는 박수가 또 다른 반짝이는 박수를 부르고, 그것이 반짝이는 ‘소리’가 되어 ‘갈채’를 이룬다. 그러고 보면 조용한 박수 역시 기립박수만큼이나 열광적인 것일 수 있겠다 싶다. 원래 박수란 무대에 선 사람을 향한 관객들의 마음인 동시에, 이에 공감한다는 일종의 공동체적 표현이지 않은가.

한편, 연주가 완전히 마치기도 전에 치는 박수는 분위기를 깨버린다. 음악 중에는 박수를 언제 쳐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곡이 있지만,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마지막 부분처럼 아주 잔잔하게 마무리되어 언제 끝났는지 조차 잘 알 수 없는 작품도 있다. 이런 곡들의 진정한 끝은 음악이 멈춘 부분이 아니라 무대 위 연주자가 침묵을 해제하는 지점이다. 이를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박수는 음악가가 가장 꺼려하는 불청객이다. 차라리 사람들의 박수를 기다렸다가 함께 동참하면 된다. 런던의 박수가 묵직하게 시작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