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작은 것의 소중함

세기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꽤 오랜 기간 동안 출연을 거부했던 극장이 있었다. 극장 음악감독과의 불화 때문이었다. 세월이 흐른 후, 열성 팬들의 요청에 의해 파바로티는 그 극장으로 돌아왔다. 단, 음악감독이 아닌 객원 지휘자와 공연하는 조건으로. 약 10여 년 전에는 무대 위에서 춤을 추던 발레 댄서가 공연 중 쓰러져 피를 흘리기도 했고, 최근에는 150명의 합창단이 웅장한 노래로 마지막 장면이 시작되었는데도 10분이 넘도록 커튼이 올라가지 않아 무대에 꼼짝없이 갖히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련의 모든 사건들은 세계적인 명성과 규모를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오페라는 프로덕션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연출자(Stage director)에 의해 좌우된다. 연출은 대본을 연구하여 가수들이 극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동선을 정해야 하고 연기도 지도한다. 지휘자(Conductor)는 성악가들과 함께 몇 번의 음악 리허설(Music rehearsal)을 따로 갖게 되는데, 이때 작품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지에 대한 기본 틀이 결정된다. 음악 리허설이 마무리 되면서 스테이징(Staging)에 들어간다. 스테이징은 연출자가 작품을 장면별로 나누고 각 장면마다 출연진들이 동선을 익히고 연기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 반복된다. 물론 노래를 하면서 말이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배역이라 할지라도 스테이징 기간 동안 해고되는 경우도 있고, 지휘자와 연출자 사이의 작품 해석 차이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스테이징 리허설에 약 2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스테이징이 마무리될 즈음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이 맞물려 시작되는데, 이때 오케스트라는 배역을 맡은 가수들의 음악적인 특성이나 필요한 부분을 지휘자를 통해 습득한다. 가수들과의 리허설이 시작되었을 때 단기간에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스테이징은 대개 큰 리허설룸에서 간단한 장치와 소품을 가지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 연습이 진행된다. 이 과정이 마무리 되면 실제로 공연할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리허설을 시작한다. 프로덕션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약 4-5회 정도의 리허설만으로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4회 공연 기준으로 배역이 더블 캐스팅일 경우, 무대에서 한 사람이 리허설 할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밖에 없는 셈이다. 무대에서 실제처럼 노래하고 연기를 해야하는 가수들에게 있어서 피아노가 아닌 오케스트라에 맞춰 소리를 내는 것은 사뭇 다른 경험일 수도 있다. 오케스트라 역시 무대 위 가수들의 노래를 잘 듣고 밸런스를 조정하며 곡을 풀어내야 하는 반복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로 소리를 내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무대 장치나 조명, 소품, 의상 등을 맡은 스태프들에게도 시간이 빠듯하다. 남자 주인공이 세 걸음을 내딛으면 곧바로 조명이 무대 위로 떨어지고, 그 순간 여자 주인공이 뒤를 돌아본다. 바로 그때 무대가 천천히 회전하며 무대 뒤에 위치한 트럼펫 주자의 차갑고 쓸쓸한 선율이 고즈넉히 흐르기 시작한다. 조명 스태프가 잠시 한눈을 팔거나 기계적인 오류가 발생한다면 여자 주인공이 뒤를 돌아볼 수도 없고, 돌아보지 않는 여인 없이는 무대 회전이나 백스테이지 밴드(Back stage band)의 연주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런 연습은 드레스 리허설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극도의 집중력과 각 파트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다.

드레스 리허설과 본 공연이 들어가면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모든 출연진과 스태프들의 손발이 되는 스테이지 매니저(Stage manager)다. 스테이지 매니저는 작품에 관련된 모든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드레스 리허설이 진행될 때에는 무대 뒤에서 헤드셋 마이크를 통해 매 순간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큐가 전달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공연 30분 전 객석 개방을 알리는 하우스 조명을 올리라는 신호부터 지휘자 입장 시간, 연주 시작 시점, 무대의 커튼이 오르고 내려가는 순간까지 공연에 관련된 모든 스태프들에게 큐를 주는 역할이다. 어떤 장면에 무슨 소품이 준비되야 하는지, 대기실에서 준비하고 있는 가수들이 얼만큼의 시차를 두고 무대에 나가야 하는지, 또 무대세트가 어떤 순간에 바뀌어야 하는지, 아리아를 부르는 가수가 어느 부분을 부를 때 조명이 어두워져야 하는지 등등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의 모든 큐는 스테이지 매니저의 손에 달려있다. 작품 전체를 꿰뚫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장 할 일도 많고 책임도 막중하다.

2009년 청룡영화제에서 영화배우 황정민은 “너는 내 운명”이라는 작품으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당시 그의 ‘발가락’ 수상소감이 큰 화제가 되었다. 수많은 스태프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서 열심히 밥을 먹기만 했는데 상을 받게 되어 미안한 마음에 트로피 끄트머리에 있는 발가락만 떼어 가면 될 것 같다는 겸손함이 담긴 내용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배우의 열연을 통해서지만 무대 뒤에서 수고하는 많은 사람들의 지원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시간적인 여유도 허용되고 감독의 편집 미학에 기댈 수 있는 영화에 비해 오페라는 스토리를 리얼타임으로 구현해야하고, 순간의 실수나 찰나의 오차가 작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분야이다. 무대에서 음악은 기본이고 미술과 연극 그리고 무용에 이르기까지,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서 는 총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대 위에서는 가수들이 멋지게 노래하고 연주자들은 피트에 앉아 열심히 연주하지만 정작 무대 뒤에 있는 톱니바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하나의 극은 완성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에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오페라도 한 편을 올리는 것도 이 정도인데, 한 조직과 국가는 어떠하겠는가? 큰 것을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작은 조각들이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2015년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