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125년이 주는 기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토목공사 가운데 하나인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아시아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해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고 핀란드 헬싱키까지 장장 6000마일에 달한다. 1891년 아시아 대륙에서 역사적인 첫 삽을 들어올렸을 때 뉴욕에서도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카네기홀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드러낸 것이다. 당시 러시아 작곡가로 유럽 무대에서 크게 이름을 떨치던 차이코프스키를 초청했다. 그는 미국인들의 따뜻한 호의에 큰 감명을 받았다. 길을 다녀도 그를 알아보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인 요청을 받았으며 본인이 직접 지휘하며 연주했던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이미 깊은 이해를 하고 있던 미국 사람들이 인상 깊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역사적인 시작을 알린 카네기홀은 1950년대를 맞아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주요 고객이었던 뉴욕 필하모닉이 연주장소를 링컨센터로 옮기면서 큰 재정적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문을 닫게 될 극한 상황까지 맞이한 카네기홀은 뉴욕시의 매입 결정과 더불어 비영리단체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되었다. 카네기홀 살리기 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은 당시 가장 유명하다는 음악가들이 등장하는 '카네기홀 갈라 콘서트'를 처음으로 시작함과 동시에 낙후된 홀의 보수공사를 주도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며칠 전 한국의 롯데그룹이 세우는 클래식 음악 전용 콘서트홀이 올 여름에 개관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원래는 지난 여름을 목표로 이 시기에 맞춰 세계적인 연주단체를 초청하는 대대적인 음악회 시리즈를 계획했었지만 건축과 관련된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되며 1년 가까이 늦어지게 됐다. 서초동 우면산 산자락에 위치한 한국 공연예술의 메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이어 28년 만에 서울에 대형 클래식 공연장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에 없는 파이프오르간까지 갖춘 그야말로 제대로 된 콘서트홀이 생기는 셈이다. 이제 첫 발을 디디려고 하는 롯데 콘서트홀의 각오가 다부져 보인다. 내용을 보니 다른 연주장소와 차별성도 있고 "예술의 전당을 따라잡는다"는 자극적인 신문기사 역시 경쟁을 부추길만한 훌륭한 시설과 환경을 돋보이게 해준다. 

일본 도쿄에는 주류회사인 산토리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세운 산토리홀이 있다. 아름다운 내부와 훌륭한 음향으로 손꼽히는 이곳은 이미 세계 굴지의 연주단체들이 서고 싶어하는 최고의 무대 중 하나다. 산토리홀이 가진 세계적인 명성 덕분에 원래 술을 파는 회사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산토리홀과 관련된 공공연한 비밀은 홀의 적자 폭이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간 고집스런 운영으로 명품 공연을 이어가며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다. 

최근 카네기홀의 예술감독 클라이브 길린슨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125년이라는 숫자를 "기회"라고 말했다. 그 시간들을 되돌아 볼 때 내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성취했는지 오롯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없다면 앞으로 어떤 길로 향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이 됐다. 장밋빛 미래를 조망하는 것만큼 켜켜이 쌓여온 역사를 되돌아 곱씹어 보는 것은 이제 출발선에 선 롯데 콘서트홀이나 30년을 지나온 산토리홀이나 마찬가지다. 훌륭한 홀을 짓고 몇 번의 명품 공연을 올리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 문화 공간이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발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써내려 가는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증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 125년의 길을 걸어온 카네기홀이 왜 최고의 무대이고 신비로운 곳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