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자를 감금시켜라!

Stella Chen - D.R.

Stella Chen - D.R.

어느 유명 화가가 한 달간 조사를 했다. 일상에서 실제로 작품에 몰두하는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따져보는 실험이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로 계산해보니 한 달에 20일 이상 그림과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업실 청소, 전시실 대관을 위한 행정 서식 작성 및 자료 준비, 우체국 가기, 중요한 미팅 등으로 소모되는 엉뚱한 시간들을 직접 확인한 후 충격에 빠졌다. 이 밖에 반려견이 좋아할 만한 사료를 검색한다거나, 배우자 직장의 연말 파티에 동행하는 개인적 업무도 있을 테니 시간은 더 쪼들린다.

2010년 칸 국제 영화제의 심사위원 그랑프리를 차지한 ‘신과 인간’이라는 프랑스 영화는 알제리의 한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에서처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던 수도사들의 숭고한 헌신에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은 신에 대한 회기, 그리고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위해 속세를 떠나는 경험을 한다. 이 곳에서는 평생의 업보처럼 여겼던 직장 상사와의 갈등도 없고, 아파트 렌트비를 내기 위해 야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소박한 한 끼를 위해 밭을 갈고, 수도원 작은 앞마당에 풀어놓은 닭들을 돌보며 비질을 하는 것이 전부이다. 

벨기에에서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는 다른 대회와 차별되는 독특한 경연 방식이 있다. 파이널 무대 직전 일주일 정도의 비교적 긴 시간을 갖는데, 이 기간 동안 콩쿠르에서 위촉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파이널리스트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 악보는 성 안에 보관되어 있고, 12명의 연주자들은 제한된 시간 동안만 곡을 접할 수 있다. 콩쿠르를 위해 새로 작곡된 곡이니 음반을 들으며 공부할 수도 없을뿐더러, 다른 경쟁자의 연습을 접할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연주자의 수준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내모는 셈이다. 

데이비드 베일즈가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에서 말했던 것처럼 예술가의 내면은 상수, 외부세계는 변수로 이루어져 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주변의 변수가 어떻게 작용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지 여부가 상수 못지않은 중요성을 갖는다. 어디서 누구와 얼마나 공부했는지, 혹은 부모나 후원자들의 도움을 얼마나 받았는지의 여부와 같은 외부 환경 요소가 이 변수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넉넉함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예술혼을 일궈내기도 한다. 명품 연기로 이름을 알린 한 유명 배우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배고픔이라고 말했고,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펜을 들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이야기도 듣는다. 세계 유명 오페라 극장의 단골 주역으로 활동하는 한 성악가는 유학 시절 돈이 없어 큰 물통에 가득 채운 물로 허기를 달래던 시기를 회고했다. 모차르트는 늘 가난해 죽음의 순간까지 빚에 쪼들려야 했고, 가난한 마차 바퀴 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하이든 역시 빈곤에 시달리며 연명했던 순간이 있었다.

지휘자이자 작곡가 레너드 번스타인은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한 필요한 두 가지 요소를 ‘계획’과 ‘빠듯한 시간’이라고 했다. 시간이 또 하나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사용되는 ‘칸즈메’라는 표현은 우리말로 통조림이라는 뜻으로 극히 제한된 기간 안에 일을 마치기 위해 시간과 환경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레 미제라블’의 빅토르 위고처럼 소설가 이외수 역시 ‘벽오금학도’를 쓰던 3년 동안 자신의 집에 철창으로 감옥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작품을 완성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는 늘 마감에 시달렸는데 만사가 여유 있는 그의 천성 때문이었다. 오죽했으면 극장장이 하인들을 불러 이런 명령을 내렸을까. “저 자를 감금시켜라!”



Dongmi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