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작은 일의 위대함

남이 쓴 원고를 꼼꼼하게 읽고 교정하는 것은 말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작정하고 잡아낼 생각을 하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 사라져버리는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그냥 흘려버리고 만다. 원고가 활자로 박혀 출판된 후에 꼼꼼하게 읽어봐야 소용없다. 눈에 불을 켜도 보이지 않던 오타나 잘못된 띄어쓰기가 남의 눈에는 신기하리만치 잘 보인다. 지인이 보내준 처녀작을 읽으며 표시해 둔 오타만 세 군데였다. 2쇄부터는 이런 오류들이 바로 잡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에게 오타에 대해 공손한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받침 하나 정도 틀리는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나 출판을 맡았던 사람의 입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은 출판사 여직원이 달팽이처럼 웅크린 채 뚫어져라 원고를 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바로 그 다큐멘터리에서 만난 수줍은 목소리의 여직원 이야기는 아직도 내 마음의 울림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책이 좋아 출판사에 몸담고 있지만 지겹도록 단순한 일의 성격 때문에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는 고백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다. 무기를 거래하는 로비스트인 그녀의 친구는 책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하며 진심으로 자기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서 틀린 글자를 찾는 것은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로비스트처럼 거창해 보이는 일이 아니다. 당장 세상을 변혁할 수 있는 일과는 더더욱 상관없다. 그렇지만 그녀는 친구와 대화를 통해 하찮다고 여겼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소중한 의미를 발견했다.

뉴욕과 런던의 왕복 비행기편 비즈니스석은 약 700만원 선으로 이 황금노선의 승객을 유치하기 위한 항공사들의 경쟁은 치열함을 뛰어넘어 사투에 가깝다. 그런데 어떤 항공사의 마케팅 전략은 작은 후추통에서 시작된다. 고객들의 식사에 함께 제공되는 이 후추통은 귀여운 비행기 모양으로 누구나 갖고 싶은 기념품처럼 생겼다. 내릴 때 주머니 속에 몰래 넣어 내리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로. 그런데 정작 그 후추통 바닥에는 ‘XX항공사에서 훔쳐온 것’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얼마나 발칙한 발상인가? 다시 후추통을 슬그머니 내려놓는 승객들은 이 항공사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갖게 되는 것이다. 비즈니스석 탑승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광고 비용을 들이는 대신 작은 후추통 하나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는 셈이다.

뉴욕은 세계의 문화 중심지이다. 수 많은 예술 단체들이 끊임없이 뉴욕을 찾는만큼 이곳을 본거지로 활동하는 예술인들과 단체들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물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처럼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단체도 있다. 그러나 한 번의 공연을 위해 수 개월을 운기조식하여 무대에 올린 후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는 단체도 즐비하다. 그러다보니 ‘뉴욕에서 3년을 생존했다면 세상 어딜 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거대자본과 연륜만 믿고 뉴욕에 판을 벌렸다가 얼마 못가서 망해 나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누가 뭘 시작했다고 하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관망하게 되는 분위기이다. 겉에서는 대박을 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그 반대의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그만큼 뉴욕은 치열한 곳이다.

이제 5주년을 맞이하는 챔버 오케스트라인 NYCP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직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생존모드’이다. 연간 15회 정도의 크고 작은 연주회가 있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음악가와 함께 대륙을 가로지르는 투어도 가졌다. 나름 최선을 다해 무대를 이어가고 있기에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한 지난 4년간의 경험에서 배운 교훈은 겉에서 보여지는 성공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특급 아티스트와 2,500명의 관객이 모이는 대형 공연을 몇 번 가진 것보다는 250명이 모이는 10회의 공연이 장기적으로 커뮤니티를 훨씬 더 건강하게 자라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의 큰 성공이 있었다하더라도 작은 열매들을 이어가지 못한다면 그 나무는 언제 쓰러지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아무리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고 해도 큰 것 한 방에만 목숨을 건다면 단체도 지역사회도 이롭게하지 못한다. 영화 ‘역린’에서 정조의 서책을 관리하는 내관인 상책은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로 시작하는 중용 23장을 통해 변화를 이끄는 동력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저명한 마케팅 전문가 로리 서덜랜드는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기억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엄청난 자본과 노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놀랄만큼 작고 사소한 것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실제로 문제를 풀기 위해 어마어마하고 그럴싸한 궁리를 하다가 단순하고 간편한 해법이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