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발칙한 판소리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남긴 희곡 <사천의 선인>은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 우화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착하고 가난한 창녀 ‘센테’를 선과 악의 대립구조 안에서 고통 받으며 갈등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깊이 있게 그려내며 자본주의 도덕의 뒤틀린 현주소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최근 이 작품은 한국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바로 판소리꾼 이자람이 있었다. 

그녀의 이력은 흥미롭다. 1984년 아버지와 듀엣으로 발표해 국민적 화제가 되었던 <내 이름 예솔아>의 바로 그 꼬마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녀는 예솔이가 갖고 있는 대중적 이미지를 뒤로하고 판소리를 공부했다. 그리고 심청가와 8시간에 달하는 춘향가를 무대에 올려 최연소 완창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이후 2004년 전주대사습놀이 일반부 장원을 차지하였고, 2006년 올해의 예술상에 이어 2010년에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다. 판소리 뿐만 아니라 자신이 결성한 인디밴드인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보컬, 영화 음악 OST작곡, 뮤지컬 <서편제>의 주인공 ‘송화’로 출연하는 등 팔색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판소리는 문학이고 음악이자 연극이다. 그 자체만으로 독립적인 장르이다. 만일 “과연 판소리는 전통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도 어렵지 않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발칙하다. ‘전통 판소리’는 존재할 수 있을지언정, 판소리는 전통에 갖혀 있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사실 판소리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자신의 이야기나 옆집 이야기를 소리로 만들고, 거기에 다른 소리꾼이 살을 붙여가며 전해져왔다. 심청가가 그렇고 수궁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제 강점시기 우리 문화를 지켜내기 위해 문화재 법으로 보호되기 시작한 문화적 자산들 가운데 오늘을 담아냈던 판소리가 전통이라는 틀 안에서 변화의 동기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소리꾼들이 이야기를 풀어낼 자유가 없어진 것이다.

판소리를 완창하는 것은 박동진 명창이 시작한 일이다. 1969년 <흥보가> 완창을 시작으로 매년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를 포함한 주요 작품의 완창 행진을 매년 이어왔다. 길게는 8시간이나 되는 소리를 완창한다는 것은 아티스트로서 자신을 증명하는 무대임과 동시에 우리의 전통이 후대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더 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게 익숙한 일상을 소리로 녹여내는 것이 판소리라고 했을 때 그녀가 말하는 것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현대 판소리의 중요성을 주창하는 이자람은 오늘의 이야기를 극화하여 음악을 덧입힌다. 그녀가 직접 대본을 만들고 작곡과 소리까지 맡아 작품을 올리고 있다. 브레이트의 <사천의 선인>을 각색한 <사천가>와 <배짱 센 엄마와 아이들>에서 착안한 <억척가>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작가 주요섭의 단편을 소재로한 판소리 단편을 무대에 올렸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원작 <이방인의 노래>를 판소리로 완성하였다. 그녀의 작품에는 각종 타악기와 전자악기도 등장하며 무대와 의상도 변화무쌍하다. 작품의 내용 뿐만 아니라 형식 역시 오늘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의 철학이 담긴 무대는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프랑스 파리와 리옹, 호주의 시드니 등 굵직한 공연장의 러브콜을 받으며 판소리에 대한 현지 평단의 극찬을 이끌고 있다.

필자는 지난 주말 짖궂은 눈보라 속에도 연주회를 감행했다. 이중 30대 작곡가의 플루트 협주곡을 명성 있는 독주자와 함께 초연했다. 현대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흥미있게 들었다는 말과 함께 그래도 좀 어려웠다는 말을 덧붙였다.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의 작품처럼 귀에 착착 감기는 곡이 아니었을테니 당연한 평가다. 그런데 우리가 즐겨 듣고 있는 <메시아>는 300년 전의 헨델이 담은 오늘이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150년 전의 러시아를 품은 산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2015년을 살아가는 30대 작곡가가 헨델이나 차이코프스키에만 머물러 곡을 쓴다면 그는 이미 전통에 갖힌 사람이다. 

작곡가들은 오늘을 담아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연주자들은 오늘이 담긴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연주함으로써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사명’이다. 전통과 새로움이 조화롭게 구현되어야 하는 이유는 오늘이 담긴 예술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생생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소리꾼 이자람이 “진정한 판소리란 오늘날에도 살아 펄떡이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