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꿈의 가수, 꿈의 무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가계는 200년 간 50여 명의 음악가를 배출했다. 아버지 암브로시우스는 당시 살고 있던 아이제나흐 시(市)의 가장 잘 알려진 음악감독으로 그의 집은 늘 음악가들로 북적였다. 당숙 크리스토프는 지역의 가장 큰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이자 뛰어난 작곡가였는데, 어린 시절 바흐는 이 두 사람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정트리오로 친숙한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가족에게도 일곱 명의 형제와 자매가 있었는데, 모두 악기를 배우면서 음악적인 영감을 주고 받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의 아버지는 바이올리니스트, 첼리스트 장한나는 작곡을 전공한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세계 유수의 콩쿨을 휩쓴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주미 강의 아버지는 동양인 최초로 바이로이트 음악제에 입성한 세계적인 베이스 가수 강병운이다. 

그러나 이런 가족적인 배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음악가들도 있다. 1981년 7월, 세기의 결혼식이었던 영국 왕실의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던 뉴질랜드 출시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라는 현역의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던 오페라 가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원주민이었고, 그녀는 20대 후반까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또한 영국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재능과 배경이 소개되면서 단숨에 엄청난 인지도를 가진 아티스트로 스타덤에 올랐던 폴 포츠(Paul Potts) 역시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을 받았던 적이 없었던 것은 물론 노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전화기 판매원으로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종합예술인 오페라는 가수들로 하여금 단순히 노래를 잘 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대 장악력, 연기력, 순발력, 다양한 사람들과 잘 융합되는 친화력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능력을 요구한다. 더군다나 외모를 중요시 하는 시대적 요구 때문에 앞서 말한 모든 능력을 가진 성악가라고 할지라도 외적으로 보여지는 상품성이 부족하면 좋은 무대에 서는 것에 제약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 최고의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소프라노 중 한 명인 안나 네트렙코(Anna Netrebko)의 경우, 10여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클래식 음반회사 ‘도이치 그라모폰’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의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노래를 못 들어본 사람이 있을지언정,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네트렙코는 전 세계 음반 시장에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필자 역시 이 시기에 잘츠부르크 국제음악제에서 네트렙코의 리허설과 연주를 참관한 적이 있다. 그녀의 실력 만큼이나 매력적인 외모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완벽한 ‘수잔나’요, 완전한 ‘돈나 안나’였을 만큼 모차르트 오페라에 최적화된 소프라노였다. 이외에 미국을 대표하는 바리톤 토마스 햄슨(Thomas Hampson)이나, 새로운 영웅의 출현으로 칭송 받는 천재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 같은 가수들도 강하면서도 호감을 줄만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다. 생전 “내 인생의 가장 후회되는 것은 체중”이라고 말할 정도로 거구였던 파바로티가 만일 요즘 갓 데뷔한 신인이라면, 과연 그를 무대에 세워줄 극장장이 얼마나 될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오페라 가수들뿐만 아니라 무대장치나 조명으로도 화제가 되는 시대이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돈 걱정 없이 최고의 무대만을 꾸민다는 메트 오페라 극장의 세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단적인 예가 바그너의 오페라 ‘반지’ 시리즈(Ring cycle)에 사용된 ‘머신’(Valhalla Machine)으로 불리우는 구조물이다. 8미터 높이의 강철 타워를 무대 양쪽 끝에 세우고 폭 60센티미터, 길이  9미터의 두꺼운 알루미늄 판 24개의 중앙을 축으로 연결한 45톤 규모의 거대한 세트이다. 부채춤에 사용되는 접이식 부채를 얼만큼 펼치는냐에 따라 평평해지기도 하고 나선형 모양이 되는 것처럼, 이 머신 역시 무대 8미터 높이의 또 다른 무대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나선형 계단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갑론을박의 논쟁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런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세트는 다른 극장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만한 거대한 스케일이다. 여기에 휘황찬란한 조명이 덧입히니 상투적이지만 “환상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몇몇 불세출의 영웅이 활약하는 별천지 극장으로부터 눈을 돌리면 현실은 냉정하다. 대부분의 극장은 재정난에 빠져 있고, 특급 반열에 들지 못했지만 여전히 훌륭한 가수들은 즐비하다. 대중이 바라는 것은 최선을 다해 준비된 무대이다. 표정 연기까지 심혈을 기울이고, 무대 위 테이블에 놓여진 작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면 관객은 그 작품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