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무대 위의 운명, 마에스트로

1946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태어난 주세페 시노폴리는 부모의 뜻을 따라 의대에 진학했다. 파도바 의대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의 과정을 거쳤고 학위를 받아 의사가 되었지만 그가 원하던 길은 아니었다. 결국 음악가의 길로 인생의 경로를 바꾸었다. 베니스 마르첼로 음대와 다름슈타트에서 작곡과 전자음악을 공부한후 빈 국립음대에 있던 당대 최고의 지휘 교수였던 한스 스바로프스키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그는 7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역사학을 비롯해 인류학, 고고학까지 두루 섭렵했던 팔방미인이자 천재였다. 지휘자로서 커리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잘 팔리는’ 지휘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지만, 리허설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인류학 박사 졸업시험에 집중했을만큼 지적 욕구가 컸던 인물이었다.
 
지휘자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고고학, 정신분석학 그리고 음악을 동일선상에 있다고 믿었던 그는 천부적인 언어 감각을 곁들여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치밀하고 독특하게 풀어냈다. 그의 오페라 해석은 엇갈리는 평가 속에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는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의 러브콜로 이어졌다. 또한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유럽 낭만파 레퍼토어에 정평을 얻었지만, 까칠한 성격과 특이한 악곡해석 방식은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의 통찰력을 특별하게 인정하는 목소리만큼 지휘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았다. 이로 인해 단원들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시노폴리의 갑작스런 죽음은 전 세계 음악계를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 당시 그는 독일을 대표하는 오페라 극장인 베를린 도이치 오퍼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지휘하고 있었다. 작품의 명장면인 사랑의 이중창이 흐르며 3막이 끝날 무렵, 무대 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객석에 있던 의사들은 쓰러진 시노폴리에게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병원에 이송되던 도중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바로 이틀 후, 그는 고고학 박사학위를 받기로 되어 있었다. 2001년 4월 20일, 당시 그의 나이 54세였다.

시노폴리가 세상과 작별한 지 13년이 지난 2014년 4월 어느 날, 큰 짐가방을 든 신사가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신임 음악감독 줄리안 코바체프였다. 대구에 발을 디딘 그는 “제 심장을 이곳 대구에 두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만큼 다부진 각오를 선보였다. 불가리아 출신의 독일 지휘자 코바체프는 모차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했고,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의 영향을 받아 지휘자로 길로 들어섰다. KBS교향악단과 국립오페라단과의 연주를 통해 이미 한국과 친숙했던 그는 대구시향의 수장으로 취임한 이후, 단원의 결혼식은 물론 모친상을 맞은 단원에게 직접 찾아가 큰절로 조문하며 한국적인 모습으로 소통하던 지휘자였다. 

코바체프가 대구시향의 수장에 오른지 1년 남짓 되었던 지난 5월 29일, 열렬한 환호 속에 연주를 마친 그가 다시 무대에 올라 지휘봉을 들었다. 그러나 앵콜곡 연주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대에서 쓰러져 연주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음악회에 참석하고 있던 의사들은 무대 위로 뛰어올라 심폐소생술을 했고, 로비에 비치된 자동심장제동기(AED)를 눈여겨 보았던 또 다른 관객의 도움으로 응급조치를 할 수 있었다. 코바체프가 쓰러진 후 병원 응급실까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16분. 골든타임 안에 모든 조치가 이루어졌다.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마비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코바체프는 자신의 심장을 지켜준 대구관객들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지휘는 리허설과 연주를 통한 체력 소모와 더불어 극도의 정신 집중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게다가 한꺼번에 많은 사람의 의견을 조정하는데서 오는 긴장도 뒤따른다. 지금까지 10명에 가까운 지휘자가 무대에서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었다. 세계적인 지휘자로 인정받는 마리스 얀손스도 오슬로에서 연주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지만 곧바로 응급실에 도착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 후 자신의 가슴 안에 AED 기기를 달았다. 지휘자였던 그의 아버지 역시 연주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하늘로 떠나보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