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미약함은 아름답다

몇 년 전 지인이 출간한 처녀작을 우편으로 전해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지인이 걸어온 인생 스토리를 알고 있었기에 활자로 박힌 그의 삶을 더 꼼꼼하게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지만, 300여 페이지 되는 저서에서 오타를 두 군데 발견했다. 하필이면 저자의 이름이라니...

받침 하나 틀리는 것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나 출판을 맡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은 출판사 여직원이 몸을 바짝 움츠린 달팽이처럼 뚫어져라 원고를 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파주 출판단지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에서 만난 수줍은 목소리의 여직원 이야기는 아직도 마음의 울림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책이 좋아 출판사에 몸담고 있지만 지겹도록 단순한 일의 성격 때문에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는 고백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다. 무기를 거래하는 로비스트인 그녀의 친구는 책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하며 진심으로 자기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서 틀린 글자를 찾는 것은 세계를 무대로 일하는 로비스트처럼 거창해 보이는 일이 아니다. 당장 세상을 변혁할 수 있는 일과는 더더욱 상관없다. 그렇지만 그녀는 친구와 대화를 통해 하찮다고 여겼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소중한 의미를 발견했다.

유럽과 북미를 잇는 가장 중요한 노선인 뉴욕과 런던 간의 승객을 유치하기 위한 항공사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한 항공사는 비행기 모양의 후추통을 제작해 비즈니스석 기내식이 제공될 때 사용하고 있다. 여행 기념품으로 집에 가져가고 싶을 만큼 예쁘게 제작된 이 작은 후추통 바닥에는 ‘OO항공에서 훔친 것’이라고 새겨져 있다. 항공사의 사소하고 귀여운 도발이 승객들에게 작은 추억을 선사한다. 저명한 마케팅 전문가 로리 서덜랜드가 말했듯이, 사람들이 잊지 못할 기억을 가지도록 하는 것은 꼭 엄청난 자본에 좌우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미미하고 사소한 것이 비즈니스석 고객의 마음을 붙든 것일텐데 거액의 광고 전략이 무색할만 한다. 

이제 일곱 번째 시즌을 시작하는 체임버 오케스트인 NYCP(New York Classical Players)는 재정 규모나 연주자들의 인원수 측면에서 볼 때도 구멍가게 수준에 가깝다. 매번 무료음악회를 열고 있지만 음악회 현장을 찾은 관객들의 도네이션은 기대치를 한참 밑돈다. 한 번은 꽤 유명한 연주자를 초청했는데 맨하튼 음악회에 700여 명의 관객이 모였다. 그런데 이날 도네이션 박스에 모인 금액은 10달러 두 개, 5달러 2개, 총 30달러였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NYCP와 같은 신생단체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이고, 재단에 기금을 신청한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상황적으로는 언제라도 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YCP가 무료음악회라는 깃발을 포기하지 않고 느린 걸음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소액 후원에 있었다. 뉴욕 메트로 지역은 물론, 덴버, 오레곤, 어바인, 시애틀, 인디애나폴리스, 워싱턴, 그리고 한국과 싱가폴 등지에서 뻗어온 작은 풀뿌리들이 서로 얽혀 버팀목이 되었다. 이 중에는 NYCP 음악회에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후원자들이 훨신 더 많다. 수 천명이 모이는 음악회 한 두 번을 위해 돈을 쏟기 보다는, 적은 인원이 모이는 음악회를 여러 번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와 음악가 모두 더 건강한 상생을 이룰 수 있다. 

역린이라는 영화에서 정조의 내관 중 하나인 상책은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중용 23장을 인용하며 작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한다. 미약함은 아름답다. 성서의 가르침에도 창대함은 미약한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