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고통의 순간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신인상과 최우수선수상(MVP)를 동시에 받은 인물이 있다. 프로무대 데뷔와 함께 방어율, 탈삼진, 다승 1위를 휩쓸며 투수 부분 3관왕에 올랐던 류현진 선수이다. 미국 진출을 선언한 그는 6년 동안 3600만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LA다저스에 입단했고, 첫 해부터 메이저리그로 직행하여 14승, 방어율 3.0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14년, 왼쪽 어깨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하더니 이듬해 봄 어깨 관절경 수술을 결정하게 되면서 그가 뿌리는 시원한 강속구를 한동안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피츠버그의 강정호 선수 역시 맹활약을 보이던 작년 시즌, 상대팀 선수의 무리한 태클로 큰 부상을 입고 무릎 수술을 받게 되어 시즌을 조기 종료해야만 했고,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영웅이자 ‘도마의 신’으로 불리우던 양학선 선수는 지난 4월 리우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는 회복을 위해 꿈을 포기했고, 후배 김한솔 선수는 올림픽 출전이 확정되었다. 끔찍한 부상이 한 사람에게는 천운이요, 다른 선수에게는 피땀어린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운명의 장난이라니.

찰나의 순간에 완벽한 운동 신경이 발휘되어야 하는 것은 스포츠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일은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A에게도 일어났다. 몇 해 전 필자는 A와 두 번째 연주를 계획했다. 주목받는 연주자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연주 보름 전, 그에게 이메일이 왔다. 팔을 다쳤고 약속한 연주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제작된 홍보물과 보도자료는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코앞에 닥친 연주를 위해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변경하고 대체 독주자를 급하게 섭외했다. 십년감수 끝에 연주는 무사히 마쳤다.

음악회 이후 A와 상의 끝에 5개월 뒤로 새로운 연주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연주를 앞두고 그는 필자에게 다시 연락을 취해왔다. 설마했던 일이 또 다시 벌어진 것이다. 몇 줄의 이메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했지만 신경을 겨를이 없었다. 연주를 겨우 끝내고 이 일이 잊혀질 즈음이 되어서야 그때의 자세한 상황이 궁금했다.

A는 맨해튼에서 러닝을 하다가 실수로 넘어지면서 바닥에 손을 디뎠는데 일시적인 통증이라고만 생각하고 계획된 연주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부상이 심각하다고 생각될만큼 큰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전문의료진을 찾아갔고, 앞으로 6개월 동안은 절대 연습을 서는 안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 악기를 잡을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사조차도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완치의 확신 없이 무작정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그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에게 음악 외에는 자신의 열정을 불태울 그 어떤 동기부여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사의 최종 진단이 내려지자 그는 연주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여러 사람과 단체가 관련되었기에 상황은 끔찍하고 입장은 난처했다. 시간은 흘렀고 A는 6개월만에 바이올린을 다시 잡았다. 처음에는 2분, 다음 주에는 4분을 연습했다. 수술 후 차근차근 재활 훈련을 통해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운동 선수들처럼, 그는 아주 조금씩 연습 시간을 늘려 나갔다. ‘이러다 통증이 다시 느껴지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몇 개월이 더 지났다. 그리고 하늘은 그의 기나긴 인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A에게서 지난 6개월은 인생의 암흑기였다. 동시에 음악이 어떤 존재인지를 뼈져리게 느꼈던 기회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달 미국과 남미의 무대를 넘나들 그의 빛나는 예술혼이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