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예술이 길다

1967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핀거스 주커만과 공동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주커만은 유태인들의 절대적인 후원을 받고 있던 대형 신인이였다. 자신 있게 파이널 무대를 마친 그녀에 비해 주커만은 긴장 때문이었는지 실수가 이어졌고 결과는 누가 봐도 정경화의 우세였다.  그러나 콩쿠르측은 재결선이라는 유례 없는 결정을 내리고 두 번째 경연을 통해 두 사람을 공동 우승으로 발표했다. 한국에서 온 무명의 소녀는 유리 천정을 뚫은 역사적인 해프닝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후 정경화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현재 평창 대관령 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인 정경화는 13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최고의 바이올린 교수로 손꼽히던 당시 줄리어드 음대의 이반 갈라미언을 만나면서 그녀의 인생은 바뀌게 되었다. 스무 살에 나갔던 콩쿠르에서 유태인들과 러시아 출신의 연주자들이 지배적이던 당시 분위기를 깨버린 당찬 여성 연주자로 탄생한 것이다. 특히 유럽에서는 무명 연주자에 가까웠지만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의 영국 투어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영국의 데카, 도이치 그라모폰, EMI와 같은 주요 음반사의 간판 연주자로 특급 오케스트라와 거의 대부분의 바이올린 독주곡들을 녹음하였고, 유럽의 중요 음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출산 후에 찾아온 왼손 마비, 교통사고, 간염, 급성 납중독 등과 같은 어려움을 오랜 시간 겪었지만, ‘이젠 끝’이라는 예상을 깨고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가며 이 시대 가장 중요한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존재감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6.25 당시 알게 된 미국 사령관의 비행기를 함께 타고 유학에 올랐던 13세 천재 소년 한동일은 한국에서 ‘신동’이라는 수식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음악가였다. 그 천재소년은 이듬해 뉴욕 필하모닉과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으로 카네기홀 데뷔했을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갔다. 이 소식을 접한 이승만 대통령은 축전과 축하 꽃다발을 보내 그를 지지했고, 케네디 대통령은 한국에서 온 천재 피아니스트를 초청해여 백악관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이후 그는 전 세계를 무대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하여 미국은 물론 영국을 중심으로하는 유럽까지 활동을 확장해 나갔다. 지독한 연주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이후 인디애나 대학교 교편을 잡은 것을 시작으로 텍사스, 보스턴, 한국을 거쳐 현재는 일본의 한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수석으로 대학을 들어간 전도유망했던 성악가가 입학 후 불같은 사랑에 빠져 한 해만에 도망치듯 유학을 시작했던 조수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입지적인 인물이다. 당대 최고의 마에스트로였던 카라얀은 그녀를 신이 내린 목소리로 극찬하였고 그가 지휘하는 음악회와 녹음 프로젝트에 초대했다. 이후 주요 음반사를 통해 제작된 수 많은 앨범은 그래미상을 비롯한 녹음 상을 차지했고,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을 섭렵했다. 그녀가 속하는 콜로라투라는 다른 소프라노 타입과 비교해 수명이 짧은 편이다.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는 최대 15년 정도. 그러나 최근 활동만 보더라도 유럽, 남미, 아시아, 미국을 넘나들며 30여년 전에 시작된 전성기를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녀가 출연하는 음악회는 늘 화제를 모으고 관객들은 넘쳐난다. 먼 곳에서 대중과 만나기 어려운 프리마돈나가 아닌, 대중을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그녀의 확고한 신념은 클래식 음악을 둘러 싼  불필요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한국인 아티스트 가운데 이런 인물이 얼마나 있을까. 

요즘은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에 국한되지 않고 관악기, 작곡, 그리고 발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재능과 끼를 펼치는 한국인 예술가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이자 음악학자인 이강숙은 김대진 교수에게 피아노를 배우던 순 국산 손열음이 국제 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선구자들은 길이 아니었던 곳을 지나가며 길을 만들고, 그 곳을 지나는 후배들은 이정표를 세운다. 그리고 꿈은 다음 세대 젊은이들이 다시 이어간다. 히포크라테스의 이야기대로 인생보다 예술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