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메트의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

주빈 메타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음악감독을 지내던 시기 LA필하모닉의 수석 비올리스트였던 앨런 드 베리치(Alan de Veritch)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 레임스 레바인을 이렇게 회상했다. “지미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재능이 넘쳤던 친구였어. 끝내줬던 피아노 실력은 두 말하면 잔소리고, 웬만한 오페라는 가사까지 달달 외우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지미(Jimmy)’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음악감독 제임스 레바인(James Levine)은 1943년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배우 출신 어머니와 의류업에 종사하던 전직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 그리고 유대교 사원에서 사용될 음악을 작곡을 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그의 집에는 피아노와 축음기, 그리고 꽤 많은 레코드판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환경이긴 했지만 그에게는 언어장애가 있었다. 일반 학교에 다니던 그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말더듬 증상이 심해지자 부모는 의사를 찾았다. 주치의는 지미가 좋아하는 것을 알아냈고 그의 부모에게 피아노 레슨을 시켜볼 것을 제안했다. 의사의 처방을 따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말더듬이 아이는 곧 완전히 회복되었다.

음악가가 되고 싶어했던 지미의 학습능력은 특출났다. 쉽고 빠르게 곡을 익혔고, 한 번 배운 곡은 잘 기억했다. 음악을 듣던 지미의 무릎에는 악보가 놓여 있었고 손에서는 뜨개질 바늘이 춤을 추었다. 그의 나이 아홉 살때는 집안에 오페라 무대를 꾸민 다음 축음기를 틀어 놓고 노래, 지휘, 연출놀이를 하더니 이듬해 신시내티 심포니와 피아니스트로 정식 데뷔무대를 가질만큼 그 재능을 인정 받게되었다. 13세가 되었을 때 말보로 페스티발에서 열렸던 모차르트 오페라 ‘코시 판 투테’의 백스테이지 합창의 지휘를 우연히 떠맡게 된 것을 계기로 그는 ‘혼자’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보다 ‘함께’ 연주하는 지휘자로서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여름마다 아스펜 페스티발에 참석해서 피아노, 실내악, 관현악곡, 음악이론 등을 배웠고,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해 피아노와 지휘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폭풍처럼 성장했던 지미의 졸업 후 커리어도 남달랐다. 볼티모어 심포니를 거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에 올랐다. 당시 음악감독은 조지 셀. 고전 레퍼토어에 있어서 최고 악단으로 칭송을 받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일구어 냈던 장본인이었다. 그를 만난 건 지미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이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메트폴리탄 오페라,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등을 이끌었는데 그의 나이 20대에 일어났던 일이다. 

‘마에스트로(Maestro)’의 저자 헬레나 마테오폴로스(Helena Matheopouls)는 제임스 레바인을 가리켜 “메트의 지휘자”라고 정의했다. 사실 그는 Top5로 불리우는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도 발군의 활약을 펼쳤고 유럽의 주요악단에서도 굵직한 커리어가 있었던 지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메트’라는 수식어는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상징이 되었다. 28세의 나이에 수석지휘자,  32세에 음악감독, 42세에는 예술감독에 오르기까지 지난 40년의 기간 동안 메트의 상징이었던 그가 지난 토요일 음악감독으로서의 마지막 연주를 마쳤다. 그의 2,557번째 공연이었다. 그렇다고 메트 무대에서 영영 그를 못만나는 것은 아니다. 명예 음악감독으로 이달 말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카네기홀 무대에 선다. 내년 시즌에도 몇 편의 오페라가 예정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를 괴롭히고 있는 병이 있다. 고질적인 척추통증과 파킨슨병이다. 음악감독직에서 물러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부디 무대 위에 선 지미를 계속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