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피어날 꽃을 기다리다 -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1973년부터 작년 말까지 43년 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용 홀 입구에는 “에이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었다. 당시 이 홀을 위해 1050만 달러를 기부했던 에이버리 피셔는 1906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1994년 겨울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뉴욕커로 살면서 링컨센터, 뉴욕 필하모닉, 그리고 챔버뮤직 소사이어티의 이사직을 맡았던 인물이다.   

뉴욕대학교 졸업 후 잠시 출판업에 종사했던 피셔는 직장을 그만두고 라디오 수신기 제작사를 설립하였고, 라디오, LP, 앰프 일체형 오디오 제품을 처음으로 선보여 성공을 거뒀다. 사업가로서 커다란 명성을 얻게된 그는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로도 활동하며 연주자 후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에이버리 피셔 상”(Avery Fisher Prize)을 설립하여 시대를 대표하는 연주자를 선정했고, 이듬해부터는 차세대 신인 연주자를 선발해 후원하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Avery Fisher Career Grant)”를 시작했다. 조슈아 벨, 길 샤함, 김지연, 사라 장, 힐러리 한, 스테판 재키브 등과 같은 바이올리니스트를 비롯하여, 피아니스트 유자 왕, 제레미 덴크, 조이스 양, 첼리스트 엘리사 와일러스타인, 마크 코소워, 대니얼 리, 비올리스트 리차드 용재 오닐 과 이유라와 같이 거장의 첫 발을 시작하는 아티스트들의 등용문으로 지금까지 41년 간, 총 166명이 배출되었다. 

이 상은 링컨센터가 지명한 추천 이사진과 실행위원회의 내부 회의를 거쳐 수상자가 결정되는데 선정 과정은 철저한 비밀이다. 올해 시상식은 뉴욕 클래식 라디오 방송 WQXR의 중계로 지난 3월 맨해튼의 그린 스페이스(The Greene Space)에서 열렸다. ‘에이버리 피셔 아티스트 프로그램’의 회장이자 줄리어드 음대 총장인 조셉 폴리시와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 도널드 와일러스타인, 그리고 피셔가의 후손들을 비롯한 많은 음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5명의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2만5천 달러의 상금이 수여되는데 한국계 연주자로서는 작년 수상자였던 크리스틴 리(Kristin Lee)에 이어, 올해 션 리(Sean Lee)가 선정되었다. 

<뉴욕 타임스>로부터 “숨이 멎을 듯한 아름다움”이라는 찬사를 받은 션 리는 2008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입상하였고, EMI 데뷰 앨범 스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는 아이튠즈 클래식 베스트셀러 20에 올랐다. 캘리포니아로 이민한 한국인 부모 아래 태어난 그는 로버트 립셋, 루지에로 리치에게 수학했고, 뉴욕으로 건너와 줄리어드 음대에서 이작 펄만과 공부했다. 

애스트랄(Astral) 소속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중인 2015년 수상자 크리스틴 리 역시 줄리어드 출신으로 도로시 딜레이와 이작 펄만을 사사했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세인트루이스 심포니와 같은 유수의 악단과 호흡을 맞췄다. 그녀의 화두는 최근 시애틀에서 출범한 ‘에메럴드 시티 뮤직(Emerald City Music)’ 실내악 시리즈가 동료 음악가들과 차세대를 위한 발판으로 제공되도록 잘 키워내는데 있다. 수상 이후 음악가로서 더 큰 폭의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출중한 능력을 가진 음악가는 우리 세대의 매우 중요한 예술적 자산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마치 활짝 피어날 순간을 기다리는 꽃과 같다. 바로 그 순간 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41년 전 피셔가 상을 제정하며 했던 말이다.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가 미국의 촉망 받는 젊은 연주자에게 수여되는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창립자 피셔와 그의 정신을 이어 받은 후손들의 변함없는 지원으로 가능했다. 그가 믿고 심었던 씨앗이 꽃으로 피어났고 오늘 우리는 그 결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