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음악이 주는 위로

지휘자 주빈 메타가 이끌고 이탈리아 피렌체 오페라 극장이 연주하는 오페라 <운명의 힘> 팀이 일본 투어를 위해 도쿄에 머물고 있었다. 마침 아내의 생일을 맞은 주빈 메타는 지인들과 함께 축하하는 의미있고 특별한 점심식사를 막 끝냈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남아있는 연주가 있었지만 상황을 조금만 더 지켜 볼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을 할퀴고 간 진도 9.0의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날이었다. 이 지진은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생된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2만 여명이 목숨을 잃었거나 실종되었고 40만동의 건물에 피해를 입혔다. 약 1천만 가구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고 교통이 마비되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열도의 북동쪽 해안가에 위치해있던 원자력 발전소는 쓰나미의 공격에 속수무책 맨살을 드러나며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지진 당시 영국 지휘자 다니엘 하딩은 뉴재팬 필하모닉의 초청으로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하기 위해 도쿄에 머물고 있었는데, 여진 가운데서도 연주를 강행했다. 1800석 전체가 매진되었던 음악회였지만 극심한 교통란에 콘서트홀까지 도착하지 못한 연주자들이 있었고, 현장을 찾은 관객은 불과 100여명에 불과했다. 음악회를 마친 후 상황은 더 나빠져 교통은 마비되어 관객뿐만아니라 연주자들까지 콘서트홀에서 밤을 지새웠다. 하딩은 이후 다른 연주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리허설이 모두 취소되어 일본을 떠나야만 했다. 

투어 중이던 BBC필하모닉은 도쿄에서 요코하마로 이동하던 중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영국으로 돌아갔고, 체코 필하모닉 역시 정부가 군용기까지 동원하는 작전을 펼치며 연주자들을 귀국시켰다. 잠재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염려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클래식 음악시장에서의 연주를 계획했던 굵직한 단체들과 아티스트들의 연주 취소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소프라노 안나 넵트렙코,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 안네 소피 무터, 드레스덴 필하모닉, 빈 소년합창단 등이 일본 연주를 취소했다.

일본에서의 비극이 알려지자 전 세계적으로 일본을 돕기 위한 자선음악회가 줄을 이었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일본인 음악가 동료들과 함께 자선음악회를 가졌다. 한 달이 지난 4월 10일에는 플라시도 도밍고가 도쿄를 전격적으로 방문, 자선 음악회를 열어 일본인들의 애창곡을 일본어로 불러 위로했다. 런던과 파리에 이어 일본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는 세계적인 일본인 지휘자 유타카 사도가 이끄는 뒤셀도르프 심포니의 자선공연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올려졌다. 

지진 당시,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비행기에 올랐던 주빈 메타도 한 달 후 다시 자선 음악회를 위해 일본을 찾았다. NHK교향악단과 도쿄 오페라극장 합창단과 함께 <합창>교향곡을 연주하여 그가 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연주 후 현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고통의 순간마다 자신을 지켜 준 것은 음악이었다고 말하며, 그렇기에 음악가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진 가운데 유일하게 음악회를 강행했던 다니엘 하딩도 런던 심포니를 이끌고 다시 일본을 찾았다. 석 달 전 100명 밖에 듣지 못했던 바로 말러 교향곡 5번을 다시 연주하기 위해서다. 그는 직접 모금함을 들고 다니며 후원을 호소하는 일도 앞장섰다. 그에게 있어서 3월 11일, 목숨을 걸고 했던 음악회로 인해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