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판 즈베덴의 입성을 기대하며

얼마 전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 얍 판 즈베덴(Jaap van Zweden)이 뉴욕 필하모닉의 새로운 음악감독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뉴욕 필 단원이었던 부모를 따라 어린시절부터 뉴욕 필 연습실을 놀이터 삼았다는 '뉴욕 필 키드'(New York Phil Kid) 알렌 길버트(Alan Gilbert) 현 음악감독은 내년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 소식은 작년 6월 키릴 페트렌코(Kirill Petrenko)가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결정되었다는 뉴스와 더불어 사람들의 예측을 뒤엎는 의외의 선택으로 평가되고 있다. 
 
처음부터 지휘자인 사람은 없다. 특히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악곡을 보는 통찰력과 각 악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적어도 악기 한 가지 정도는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여기에 작곡 능력까지 가졌다면 금상첨화다. 대개는 이런 사람들이 지휘로 전향하거나 두 가지를 겸한다. 경우에 따라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다보니 대인관계와 소통 능력도 중요하다. 더불어 경험과 연륜까지 갖췄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동료들과 이뤄나갈 선명한 목표와 이를 위한 추진력이 없다면 연주자들은 금세 타성에 젖거나 긴장을 잃어버리기 쉽다. 과연 이런 조건을 고루 갖춘 지휘자가 얼마나 될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받고 자란 판 즈베덴은 어느날 부모를 따라간 작은 음악회에서 들었던 바이올린 소리에 매료되었다. 집안의 지원을 받으며 꾸준히 성장하던 그는 15세에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어 줄리어드 음대에서 명교수 도로시 딜레이와 공부했다. 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는 3년 후 고국의 부름을 받아 로열 콘체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oyal Concertgebouw Orchestra-RCO)의 악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는데 당시 나이는 18세에 불과했다. 유럽 음악계에 네덜란드가 변방이 아님을 증명하는 RCO의 최연소 악장 취임은 그 자체만으로 화제였다.

14년 동안 도쿄현악사중주단의 제 1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피터 운진(Peter Oundjian)은 고질적인 신경근육의 손상 때문에 풀타임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다. 바이올린을 공부하던 시절 부전공으로 지휘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특급 연주자에서 삼류 지휘자 취급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연주자의 입장을 뼛속 깊이 이해하는 베테랑 바이올리니스트이었고, 풍부한 연주경험과 특유의 친화력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예일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틈틈이 지휘자로서의 경력도 쌓아갔다. 유럽의 악단을 비롯해서 콜로라도,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에서 단골 객원지휘자로 명성을 얻다가 2003년 고국 토론토 심포니(Toronto Symphony), 2012년에는 로열 스코디시 내셔널 오케스트라(Royal Scottish National Orchestra)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유럽 최고의 악단에서 17년간 악장을 지내던 판 즈베덴 역시 암스테르담을 찾았던 번스타인의 영향을 받아 지휘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흠잡을 데 없는 실력으로 최고의 악단을 이끌었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해서 모두 피터 운진같이 성공한 지휘자가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판 즈베덴은 자신의 존재를 차근차근 증명해 나갔다. RCO에서 만났던 수많은 지휘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연주했던 셀 수 없이 많은 곡은 자신이 가진 무기였다. 여기에 최고 수준의 음악을 만들고 싶어하는 목표에 타협하지 않는 그의 강직한 성품이 장착되자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달라스 심포니,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직에 오르며 그의 진가를 입증해 나갔다. 

판 즈베덴은 데이비드 게펜 홀(전 에이버리 피셔 홀)이 보수공사를 시작하는 2018-19 시즌부터 뉴욕 필의 음악감독직을 수행하게 된다. 안방 없이 살림을 꾸려가야 하는 상황이다. 공사 기간 동안 뉴욕 필은 떠돌이 신세가 된다. 관객을 잡아야 하고 악단도 본인의 색깔로 바꿔 존재감을 입증해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 앞에 놓여진 난제들이 오히려 엄청난 기회라고 말했다. 두려움 없이 도전한다고 말하는 그의 뉴욕 입성이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