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얍 판 즈베덴, 뉴욕 필의 미래를 본다.

1996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무대에 로열 콘체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가 섰다. 지휘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이 홀에서 RCO의 사운드가 어떻게 울려퍼질지 궁금했다. 당시 연주곡목이었던 말러 교향곡 1번은 그의 호기심을 시험해보기에 완벽한 곡이었다. 그는 악장에게 지휘봉을 맡기고 객석 쪽에서 소리를 들어볼 참이었다. 당시 34세였던 악장은 젊은 편이었지만 16년차 베테랑이었다.

처음에는 번스타인의 청을 거절했다. 연주를 수 십번 했다고 해서 지휘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동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번스타인은 그에게 억지로 떠밀듯이 지휘를 맡기고 홀 뒷쪽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첫 번째 지휘 연습이 말러 1번이라니… 정신없는 1악장의 15분이 지나갔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럴 때 멋지게 지휘를 해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온 번스타인은 의외로 그에게 뭔가 특별한 부분이 있다며 지휘를 공부해 볼 것을 권유했다. 1년 후, 그는 바이올린을 그만 두고 지휘자의 길로 들어서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선언했다. 그는 바로 얍 판 즈베덴(Jaap van Zweden)이다. 

판 즈베덴은 피아니스트인 아버지의 권유로 5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15세가 되었을 때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아들의 가능성을 확인한 부모의 도움으로 뉴욕 유학길에 올라 줄리어드 음대에서 도로시 딜레이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미국 생활 3년차가 되었을 때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그를 만나기 위해 뉴욕을 찾았다. 당시 RCO의 음악감독이었던 그는 18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악장직을 맡아 줄 것을 요청했다. 그야말로 파격이자 모험이었다. 판 즈베덴은 그로부터 1997년까지 17년 동안 유럽 최고 악단의 악장으로 활동했다. 

지난 1월 27일, 판 즈베덴이 2017년 가을부터 뉴욕 필하모닉의 26번째 음악감독으로 취임한다는 깜짝 뉴스가 발표되어 전 세계 음악계를 뒤흔들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2008년 달라스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그의 존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달라스가 지명도 없는 유럽 출신 지휘자에게 2006년 단 한번의 객원지휘를 계기로 음악감독직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2012년에는 홍콩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으로 입성한다는 소식까지 날아들었다. 

그는 현대음악의 비중과 투어를 늘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케스트라를 혹독하게 조련했다. 달라스의 악장 알렉스 커(Alex Kerr)는 판 즈베덴을 가리켜 악장만이 할 수 있는 기술적인 디테일까지 꿰뚫고 있어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장악한 지휘자라고 평가했고, 홍콩의 수석 비올리스트 앤드류 링(Andrew Ling)은 깐깐하고 철두철미한 그의 리허설 때문에 모든 단원들이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에너지를 쏟아내는만큼 연주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하는 것이 그의 철학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의 강직함은 종종 불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달라스의 한 언론은 그와 일부 달라스 단원들 사이에 불거졌던 갈등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들어볼 수 없었던 사운드가 만들어진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판 즈베덴의 손을 들어줬다. 최고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에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목표는 명쾌하다. 

판 즈베덴 부부는 자폐아동을 지원하는 파파게노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둘째 아들이 자폐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작은 오케스트라부터 시작해 전 유럽과 뉴욕까지 자리를 꿰찬 판 즈베덴은 마치 칭기스칸과 같은 저돌적인 야심가처럼 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성공을 경계하며, 세상의 다른 면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불행해지더라'는 그의 말이 공감되는 이유이다. 작은 성취에 도취될 때 오히려 그것이 덫이 되어 내 발앞에 놓여질 수 있다. 음악을 더 깊이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겠다는 그의 철학이 뉴욕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실현될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