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게펜의 시대

지난 3월 5일 뉴욕타임스의 1면은 ‘게펜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깜짝 기사로 장식되었다. 링컨센터에 위치한 뉴욕 필하모닉의 안방, '에이버리 피셔홀(Avery Fisher Hall)’의 레노베이션 계획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1억 달러(약 1200억원)라는 거액을 쾌척한 데이비드 게펜(David Geffen)은 2002년, UCLA 의과대학에 2억 달러(2400억원)를 기부했고, 그로부터 10년 후 1억 달러의 장학금을 추가로 내놓았다. 미국 연예산업의 거물인 그는 작년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400인의 자산가 가운데 68위를 차지했고, 두 개의 음반회사를 세워 이글스(The Eagles), 에어로스미스(Aerosmith), 건스 엔 로시즈(Guns N’Roses)와 같은 입지적인 밴드를 키워낸 장본인이다. 또한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와 손잡고 드림웍스(DreamWorks SKG) 영화사를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미술작품들을 소유한 소장가이기도 하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에이버리 피셔홀의 내부를 굳이 뜯어내고 5억 달러(약 60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재건축을 감행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음향에 아쉬움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주요 콘서트홀 가운데 음향이 가장 열악한 곳은 에이버리 피셔홀과 워싱턴 DC에 있는 케네디 센터이다. 공교롭게도 이 두 군데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두 도시에 위치해 있다. 케네디 센터를 홈으로 하고 있는 내셔널 심포니 역시 미국의 손꼽히는 명문 오케스트라임에도 불구하고 홀이 주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카네기홀, 보스턴 심포니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버라이즌홀, LA필하모닉의 월트디즈니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세브란스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데이비스홀 등은 미국 내에서 음향이 가장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도쿄의 산토리홀이나 암스테르담의 콘체트르게바우홀, 비엔나의 무직페라인홀 등은 수많은 연주자들과 단체들이 가장 사랑하는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곳이다. 

지금의 에이버리 피셔 홀의 재건축을 위해 피셔 일가는 1973년에 1천만 달러(약 120억원)의 후원금을 약속하면서 ‘에이버리 피셔홀’로 이름짓게 했다. 추후에 다시 짓거나 개축하더라도 홀의 이름은 변경하지 않겠다는 단서는 당시 링컨센터가 내걸었던 약속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또 다른 후원자 게펜에게 내놓을만한 매력적인 제안이 필요했다. 바로 홀의 명패를 바꾸는 것이었다. 

링컨센터 회장 캐더린 페어리(Katherine Farley)는 피셔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 홀 이름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미 법적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만일 피셔 일가가 그 부탁을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불가능할 것 같았던 협상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협상 내용은 링컨센터가 피셔 일가에게 1천 5백만 달러를 배상하고, 새로운 홀의 로비에 피셔의 상징물을 세워 그의 업적을 기리는 조건으로 이름을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링컨센터는 적지 않은 금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더 큰 금액의 후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win-win이라고 할 수 있다.  

세기의 협상 타결을 이뤄낸 캐더린은 게펜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에이버리 피셔홀이 법적 자유의 몸이 된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둘 사이에 또 다른 세기의 협상이 진행되었다. 게펜은 1억 달러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새로운 홀의 이름을 ‘데이비드 게펜홀’로 명명할 것과 추후에 어떤 상황이 생겨도 이름을 변경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계약서에 싸인했다. 비로소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홀'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