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새로운 시대, 새로운 피아노

피아니스트에게 최고의 피아노가 어떤 것인지 물어본다면 열에 아홉은 '스타인웨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최고의 피아노 명품 제작사의 자리에 오른 스타인웨이는 독일 출신의 가구 제작가가 19세기 초반 뉴욕으로 건너와 자신의 아들들과 피아노 제작에 뛰어들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 주요 콘서트홀에 스타인웨이 D가 없는 곳은 단연코 없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현재 뉴욕과 독일 함부르크에서 생산되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한 대의 제작 기간은 약 2년 정도. 총 1만5000여 개에 달하는 부품이 사용되어 100%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이 피아노는 추운 지방의 가문비 나무 원목을 특수 처리하여 울림통과 건반을 만든다. 약 30여 톤의 힘으로 당기는 줄의 장력을 견뎌낼 특수 금속 프레임과 철골을 비롯한 100여 개의 관련 특허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명품에 걸맞게 가격 또한 실망시키지 않는다. D모델의 경우 20만 달러가 넘으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흥미로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영국의 대표 언론 가디언(The Guardian)은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 정평이 난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의 기자회견을 적극 소개했다. 지난 2011년부터 바렌보임과 피아노 제작자인 크리스 매니(Chris Maene)가 손잡고 개발한 신개념 피아노를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바렌보임'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지어진 이 피아노는 건반 숫자도 88개이고 외관상으로는 기존 피아노와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기존 피아노 줄이 저음 중음 고음을 교차시켜 배치된 것과는 달리 이 피아노는 모든 줄이 같은 방향으로 향하게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줄의 장력을 버티기 위해 특수 제작된 브리지를 비롯해 해머 역시 새롭게 배치되었다. 

그렇다고 바렌보임 피아노가 기존 피아노에 비해 소리가 크게 나는 것은 아니다. 바렌보임은 '더 나은 피아노'라는 표현 대신 연주자가 다른 형태의 피아노를 고려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대항마'로서 분명한 가치를 가진다고 말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듯이 스타인웨이가 갖고 있지 못한 점을 바렌보임 피아노가 가지고 있다고 선을 그어 말했다. 

이 피아노는 손가락 끝과 건반 사이의 새로운 관계의 장을 열었으며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청명한 소리는 연주자들로 하여금 페달 사용의 새로운 신기술을 열게 될이라는 기대감과 흥분으로 가득했다. 바렌보임의 신개념 피아노가 얼마나 많은 전문 연주자들의 손에 의해 연주될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상업적 역할을 하는 대량생산으로 이어져 기존의 피아노 자리까지 위협하게 될지 흥미있게 지켜볼 대목이다. 

피아노가 오늘날의 형태를 가지게 된 지 약 150년이 흘렀다. 뛰어난 피아노 작품을 많이 남겼던 쇼팽이나 리스트 시대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피아노였다. 이는 피아노가 더 유려하게 작품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로 진화된 부분도 있지만 당시 피아노가 표현할 수 있는 물리적인 한계치를 뛰어넘는 작품을 쏟아낸 작곡가들의 역할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피아노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만든 악기 제작산업이 눈을 뜨게 되며 피아노를 소유하는 것이 더 이상 부의 상징으로 등치되던 시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번 바렌보임 피아노의 등장으로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발전된 오늘날의 피아노가 다시 한 번 진화를 위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