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콩쿨의 아이러니 2

핼리혜성은 75년을 주기로 한 번씩 지구를 찾아온다는 행성이다. 기원전 240년 전 중국의 한 천문학자에 의해 처음 관측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행성은 육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혜성이다. 가장 최근에 관측된 핼리혜성은 1986년 지구를 찾았을 때였다. 75년 주기라고 하니 2061년쯤 다시 만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세기의 이벤트인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4년 주기로 개최된다. 다만 두 행사가 겹치지 않기 때문에 2년에 한 번씩 교차로 열리는데, 특히 2015년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있어서 마치 월드컵과 올림픽, 동계올림픽 게다가 핼리혜성까지 종합세트처럼 몰려있는 해와 같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콩쿨이 한꺼번에 열린다. 가장 최근에 폐막된 차이코프스키 콩쿨(러시아)을 시작으로, 퀸엘리자베스 콩쿨(벨기에), 마이클힐 콩쿨(뉴질랜드), 파가니니 콩쿨(이탈리아), 서울 국제음악콩쿨, 싱가포르 바이올린 콩쿨이 있었다. 그리고 시벨리우스 콩쿨(핀란드)과 하노버 콩쿨(독일)이 올해 하반기로 예정되어 있다.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 

지난 달 함께 연주했던 동료 한 명은 올 해 초부터 9개월 동안 6개의 국제 콩쿨에 출전했고, 그 중 두 개의 대회에서 입상하는 성과를 얻었다. 그녀가 회상하는 9개월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괴롭고 외로웠던 시기라고 했다. 굵직한 콩쿨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피땀어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부연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요즘은 대회 실황 전체가 인터넷으로 생중계가 될 뿐만 아니라, 각종 매체를 통해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에 실력이 되지 않는 사람이 섣불리 명함을 내밀었다가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특히 가장 최근에 있었던 차이코프스키 콩쿨에 참가한 바이올리니스트들 가운데 이미 이 바닥을 접수(?)한 바 있는 소위 유명 연주자들이 대거 포진해 관심을 끌었다. 그중에는 굳이 콩쿨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한국 바이올리니스트가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1등을 해도 본전밖에 안될 그녀가 그 대회에 출전한 이유가 무엇이었을지에 대해 여러 예측이 난무했고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손에 멍이 들 정도로 엄청난 연습을 쏟아 부었던 그녀에게도, 비슷한 열정으로 준비했을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1위의 영예는 돌아가지 않았다. 4년 전 이스라엘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이타마르 조르만이 이 콩쿨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을 당시와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엄청난 재력과 입상자 혜택을 내세운 신생 콩쿨들이 쏟아지며 실력있는 젊은 연주자를 배출하고 있는 오늘날의  콩쿨은 무한 경쟁이다. 한 콩쿨이 자생할만한 생명력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60-70년의 역사와 전통만이 아닌 검증된 입상자들을 꾸준하게 배출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다. 마치 명문 대학이 좋은 학생들을 모집하고 출중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 발, 혹은 두 발 앞선 콩쿨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 대회들이 있는데 올해 열린 퀸엘리자베스와 차이코프스키 콩쿨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차이코프스키 대회에 초청된 바이올리니스트들 중에는 특급 대회의 상위입상자들이 유독 몰려 있었다. 과연 이들이 이 대회의 출전을 원했던 것일까? 확인된 바는 없지만, 만일 대회의 총감독을 맡았던 거장 게르기예프가 초청했다면 쉽게 마다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이나 저명한 음악가들이 입상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접근해 본선 진출을 보장하고 대회에 도전해 볼 것을 권유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비단 이번 전쟁 뿐만이 아니다. 여느 대회와 마찬가지로 출전자들이 콩쿨을 통해 배운 점이 없지는 않겠으나, 가끔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을 때의 좌절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콩쿨에 참가했던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아쉽고, 속상하고, 허무했다”고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종 결선 무대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녀가 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