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진심을 가지고 마음을 얻어라

시카고에서 남서쪽으로 250마일정도 떨어진 인디애나 주에 블루밍턴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총 인구 8만 여 명 가운데 절반은 인디애나 대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이다. 2005년 필자가 이 학교에서 유학생으로 공부하던 시절, 인디애나 음대는 제이콥스 가(家)로부터 400억원이 넘는 기부를 받게 되었다는 뉴스를 발표했다. 학부와 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비롯하여 명망있는 교수진을 충원하는데 사용될 이 기금을 위한 축하행사로 학교 안팎이 떠들썩했었다. 당시 이 금액은 미국 공립 음악대학의 개인 단일 기부로는 최대액수였다. “음악대학” 이라는 평범한 명칭은 “제이콥스 음악대학”으로 간판을 바꾸게 되었고, 이 기부를 통해 수많은 학생들이 더 나은 환경 속에서 배움과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천문학적인 후원은 어떻게 성사되었을까? 막강한 재력을 가진 사람이 “어디에 기부를 한 번 해볼까?”하며 지원이 필요한 단체를 점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눈먼 돈, 공짜로 걸어 들어오는 돈은 없다는 말이다. 비영리단체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후원금 1달러를 받는 것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작은 연주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머리에서부터 펜 끝으로 내려와 후원금에 서명을 하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다고 말하는 NYCP 후원자의 소회를 들으면서 더 많은 예비 후원자들을 만나고, 후원 설득에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음을 체감한다.  

제이콥스의 후원 역시 오랜 시간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남편 데이빗과 부인 바바라는 모두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세 자녀 역시 모두 같은 학교에서 공부했고, 그 중 한 명은 음악대학 출신이다. 데이빗과 남동생 리차드는 클리블랜드 지역의 영향력 있는 재벌가이다. 1986년부터 2000년까지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구단주로 활약했고, 미 전역에 40개가 넘는 쇼핑몰을 소유하고 있으며, 도심의 초고층빌딩인 키 타워(Key Tower) 건축의 투자자이기도 했다. 바바라는 인디애나 대학 재단 소속 장학기금 위원회의 공동대표로 5000억원 이상의 후원금을 유치하는데 공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콥스의 직접적인 후원이 이루어진 중요한 계기는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음악대학의  명예학장(당시 학장)인 찰스 웹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제이콥스와 오랫동안 가깝게 교제하면서 음대를 위한 기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호소했고 음대의 위상에 맞는 지원이 절실하다고 설득했다. 찰스 웹은 1997년에 명예학장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관계를 이어갔고, 제이콥스가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산파 역할을 담당했다. 

대학 총장이나 학장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재정확충이다. 아무리 학문적 성취가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재정을 끌어오지 못하면 반쪽짜리인 셈이다. 이는 비단 대학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문 연주단체도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미국 내 20위권 오케스트라의 CEO가 갑작스럽게 사임을 했다. 모든 내막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떠난 직후 이 오케스트라는 단원임금 삭감을 포함한 고강도 구조조정을 감내해야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CEO가 떠났기 때문에 오케스트라가 어려움에 빠진 것이 아니라, 어려움의 징조가 짙어지자 미리 떠나버린 것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가 자금을 충분히 끌어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오케스트라의 경우 CEO와 더불어 지휘자의 존재 자체와 역할이 매우 중요한 수입의 근원이 된다. 전설적인 지휘자로 기억되고 있는 게오르그 솔티는 1967년 부터 1991년까지 시카고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재직하며, 이 오케스트라가 오늘날의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재직했던 24년 동안 높은 예술적 성공을 이룩했을지언정 정작 시카고라는 도시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연주나 녹음을 위해 시카고에 들를 때면 리허설과 연주를 제외하고는 숙소를 떠나지 않으며 두문불출했다. 이 도시를 좋아하지도 즐기지도 않았다. 후임 음악감독인 이스라엘 출신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 역시 재임 기간 동안 음악적인 공헌은 높았지만 펀드레이징 관련한 중요 인사를 만나거나 이사회 일에 관여되기를 거부했다. 그는 공공연하게 미국 오케스트라가 요구하는 지휘자의 펀드레이징 역할에 염증을 느낀다고 말했고, 결국 시카고 심포니를 떠났다. 

사람을 설득하고 재정 후원을 이끌어내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펀드레이징은 “사람과 돈” 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진심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돈을 위해 사람을 대한다면 백발백중 실패다. 그렇기 때문에 비영리단체는 진심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