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곡함의 무게

<A steady Rain>은 2007년 시카고에서 초연된 이후 비평가들로부터 그 해 최고의 연극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2009년에는 뉴욕에서 영화 레미제라블과 엑스맨 시리즈로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휴 잭맨(Hugh Jackman)의 주연으로 무대에 올려져 관객과 평단의 격찬을 받았다. 3개월 간 이어진 공연을 통해 약 1,200만 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올려 브로드웨이 연극 부분의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등 많은 화제와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미국의 대표적인 여류 저널리스트인 케이티 쿠릭(Katie Couric)은 2009년 휴 잭맨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대에서 벌어졌던 휴대전화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주인공이 무겁고 집중력 있는 대사를 쏟아가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는 장면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휴 잭맨은 관객을 행해 “전화 받으시려고 하는거죠? (You want to get that?)”로 자신의 대사를 대신했고, 전화벨이 이어지자 “제발 전화 좀 끄세요!(Come on, just turn it off)”라고 이야기했다. 이 사건은 객석에서 촬영된 영상으로 한 매체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휴 잭맨의 재치 덕분에 현장에 있던 관중들의 짜증 섞인 야유 대신 박수와 환호로 넘길 수 있었던 일화가 되었다.

소극장 공연을 하는 어느 뮤지컬 배우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죽은 딸을 위해 엄마가 슬픈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9시!’라고 외치는 전화 알림음이 울려 울음바다가 되어야 할 장면이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는 진짜 웃을 수 없는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다. 공연장 뿐만이 아니다. 2012년에는 KBS 9시 뉴스에서는 뉴스를 진행하던 아나운서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진행자가 급하게 손을 뻗어 황급히 전화벨 소리를 끄는 모습이 그대로 전국으로 방송되었고, 이 사건은 아직까지도 방송가의 전설(?)로 오르내리고 있다.

필자에게도 가슴 쓸어내릴 상황이 있었다. 몇 년 전 맨하탄에서 열렸던 음악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공연의 전반부를 마치고 두 명의 독주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눈 다음 휴대전화로 잠시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후반부를 위해 무대 위로 유유히 걸어나가 음악회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전반부에는 대기실에 있던 휴대전화가 지휘자의 손에 의해 무대 코 앞까지 진출하게 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음소거도 되지 않은 최고의 화력을 가진 시한폭탄과 같은 녀석이 완전무장을 갖춘 채 무대 입구에 뻔뻔하게 놓여져 있다니... 관객들에게는 전화기를 꺼달라고 이야기 하면서 정작 “지휘자”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낯뜨겁고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행히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지만 그날의 실수는 두고두고 잊지못할 경각심을 주었다.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회에서는 지휘자가 연주를 중단했던 일도 있었다. 공연 중 지휘자와 가까운 앞자리에서 벨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새로 구입한 전화기 조작법을 몰라 허둥대는 동안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결국 지휘자는 연주를 멈췄다. 그리고 몸을 돌려 전화를 꺼달라고 부탁했고 전원이 꺼진게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현장에서는 피를 원하는 무고한(?) 관객들이 고성으로 주인공을 공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은 실연으로 듣기 쉽지 않은 말러의 9번 교향곡으로 총 90분 중 마지막20마디만을 담겨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태의 주인공은 평소 음악회장에서 울리는 소음이나 몰상식한 관객들의 태도에 민감했던 사람이었고, 특히 뉴욕 필하모닉을 후원해왔던 클래식 애호가였다. 정작 본인이 많은 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자 몇 일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한 설문조사에서 휴대전화 소음이 최악의 관객매너 부분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공연을 관람하던 중 걸려온 전화를 받아 자신이 공연 관람하는 중이라고 “말” 하는 뻔뻔하고 몰상식한 관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본 공연 예절에 대해서 잘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일은 공영방송 9시 뉴스에서도, 무대 위에 오른 연주자에게서도, 그리고 음악 애호가들뿐 아니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PT체조에서 마지막 구호는 붙이지 않는다. 한 명이라도 마지막에 구호를 붙이면 함께 훈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그 결과가 돌아간다. 사고는 늘 생긴다. 식견이 없어서도 아니고, 몰라서도 아니다. 단지 부주의해서일 뿐. 공공의 적이 되지 않으려면 공연 전 휴대전화를 확인해 달라는 간곡함의 무게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다.

Dongmi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