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별을 잃다 – 마에스트로, 로린 마젤

지난 7월 14일, 전 세계인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브라질 월드컵의 우승팀 독일 축구팀의 감격적인 모습이 뉴욕 타임즈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리고 그 아래, 지휘자 로린 마젤이 향년 8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는 소식이 생전 지휘하던 모습의 사진과 함께 실렸다. 

“로린 마젤? 그 사람 누군데?”라고 물었다가 챙피 당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 뉴욕에서 오래 살았다면 더더욱. 7년 동안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지냈고, 70년 동안 유럽과 미국의 주요 악단과 오페라 극장의 수장을 거친, 그야말로 ‘거장’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지휘봉 하나로 통일 전 시대의 동독, 냉전시대의 구 소련, 그리고 2008년에는 뉴욕 필하모닉을 통째로 데리고 평양에서 음악회를 열만큼 시대의 갈등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예술적 행보를 보여왔다. 2013년에는 2월과 4월, 두 개의 다른 오케스트라로 한국을 찾았고, 전 세계를 돌며 111회의 콘서트를 이끌었을만큼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왔던 그의 비보는 가히 충격에 가까왔다.

그는 여타 유명 지휘자들처럼 특정 작곡가나 장르의 전문가로서 명성을 얻은 지휘자가 아니다. 시대, 장르, 형식, 레퍼토리의 경계 없이 모든 곡을 자기화 시키는 천재였고, 거의 모든 연주에 악보가 필요가 없었을만큼 지독하게 뛰어났던 지휘자였다. 베토벤이나 말러의 작품을 외워서 무대에 오르는 지휘자들은 많지만, 합창, 어린이 합창, 두 명의 독창자, 그리고 각종 전자악기군을 장착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현대음악을 초연하면서 악보 없이 완벽하게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코 로린 마젤 뿐이다. 서울시향의 정명훈 감독 역시 끝없이 악보를 파고들어야하는 고충을 이야기하면서 로린 마젤의 독보력과 암보력이 제일 부럽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Photographic memory로 알려진 그의 암보 방법은 말 그대로 악보를 하나하나 사진 찍듯이 머리에 저장을 하는 것인데 노력하면 몇 페이지야 가능하겠지만, 셀 수 없이 많은 곡들을 그렇게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은 지휘자들에게 있어서 하늘의 은총이다.

난곡으로 알려진 스트라빈스키 <3개 악장의 교향곡>의 리허설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 젊은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시작했다. 진행되는 광경을 지켜보던 로린 마젤은 잠시 연습을 멈춘 후, 그 지휘자가 그냥 지나쳐버린 부분들을 하나씩 지적했다. 나를 포함해 악보를 가지고 있는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 조차 알아채지 못했던 작은 실수를, 마치 우주의 이치를 통달한 사람인 양 팔장을 낀 채 구석에 앉아 악보 속의 진리를 끌어내 그 젊은이에게 증명해 보였다. 리허설 현장에서 숨죽여 지켜보던 사람들의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때가 2001년 미국에서 지휘 공부를 막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이 사건(?) 직후 그가 지도하는 클래스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로린 마젤에게 한 수를 배우다니!’라는 긴장과 기대함으로 마법 같은 그의 한 수를 기다렸다. 그런데 정작 아직까지 또렷하게 기억 남는 가르침은 악곡 해석 비법도 아니고, 사람들을 사로잡는 리허설 기술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기본기였다. 4/4박자의 곡을 지휘할 때 첫 박과 세 번째 박자를 십자 모양으로 정확하게 그려야 연주자들이 편하다는 내용. 이건 마치, 악보를 내밀면서 ‘흰 건 종이고, 검은 건 음표’라는 사실을 배운 것과 비슷하다.

그는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 활약했고, 페이스북, 트위터까지 직접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즐겼다. 로렌 마젤은 내 방식대로를 고집하는 완고한 할아버지가 아닌,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이 시대에 그런 뛰어난 올-라운드 음악가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가 없는 세상이 한 동안 더욱 쓸쓸할 것 같다. Rest in Peace, Maestro Lorin Maaz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