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베일 벗기기

어린아이 손 한 뼘 두께의 전화번호부를 들춰보면 어디를 보더라도 글자와 숫자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숨이 턱 막힌다. 원하는 번호만 찾은 후 금세 덮어 한 구석으로 치워둔다. 행여 언젠가 다시 필요할지 몰라 버리지는 못한다. 그리고는 2-3년이 흐른다. 어디선가 개정판 전화번호부를 받아오는 날이면 옛날 전화번호부는 학교에 폐품으로 처리. 어린 시절 우리 집 모습이 이랬다.

학창시절 분명 필독도서였는데 그 목록들 가운데 읽은 책은 정작 얼마 되지 않는다. 그땐 책 읽기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냥 이유없이 싫었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독후감을 냈으니 글을 잘 썼을리가 만무하다. 매년 학기를 시작할 무렵 학급문고를 만든다고 집에서 책을 한 권씩 가져가야 했다. 의무적으로… 물론 거기서 책을 빌려서 읽지는 않았다.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라는 직설적인 제안과 현실 사이에는 베일이 가려져 있다. 그 베일 안에는 예상대로(?) 철옹성처럼 두터운 벽이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나의 감성 어딘가와 이미 맞닿아 있다. 단지 베일을 들춰보지 않아서 모르고 있을 뿐... 그래서 베일을 거둬내기 전까지 클래식 음악은 어쩌면 두터운 전화번호부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지인 가운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한 분은, 유명 연주자가 출연하는 음악회부터 시작해서 동네 아이들 무대까지 열심히 음악회를 찾아 다닌다. 이분의 경우, 취미로 악기를 배우는 자녀들의 영향을 받아 흥미의 연결고리를 찾게 된 케이스다. 주말마다 맨하탄의 음악학교에 자녀를 데리고 다니면서 수업도 참관하고 학교 분위기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접촉점이 많아진 셈이다.

한국의 한 공연기획사에서는 뉴욕의 젊은 음악가들을 발굴해서 클래식계의 아이돌처럼 멋진 상품으로 만들어냈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열리는 이들의 연주회는 풍선이나 야광봉만 없다 뿐이지 잘나가는 K-pop 아이돌 그룹 못지 않게 열광적이다. 처음에는 귀에 착착 감기고 달달한 명곡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짰지만, 수 년이 흐른 요즘은 편하고 쉽게 들을 수 있는 곡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작품성 있는 곡들도 무대에 올려지지만 음악회장은 젊은 관객들로 꽉꽉 들어 찬다고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떤이에게는 백화점 광고에 등장한 아이돌 외모의 잘나가는 연주자 사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악기를 공부하는 사춘기 자녀를 둔 덕에 귀동냥으로 접한 음악이 첫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짝사랑했던 음악 선생님의 연주에 마음을 뺏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마음 한 켠에 남아서 내내 발목을 잡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사춘기 시절 어느해 겨울, 함께 음악을 공부하던 선배가 적어준 다섯 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평소에 음악과 담 쌓고 사는 사람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느냐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은 4분짜리 가요에 비해 길고 지루하다고 느껴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게 걸림돌이 된다. 그 심정, 이해한다. 그러나 베일에 가려져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내 어딘가와 연결된 지점을 찾을 수만 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질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클래식이 길고 지루해서 싫다고 하는 사람만큼이나 편안하고 오래 들을 수 있으며, 유행을 따라가지 않아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