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특별한 보상

주변에 유독 잡기(雜技)에 능한 사람이 많은 편이다. 한국의 한 국립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후배는 자신의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새롭게 출시되는 웬만한 전자제품의 사양을 꿰고 있다. 상품 구입의 최저가를 보장하는 가장 적합한 시기나 방법까지 파악하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생활 정보를 전해주곤 했다. 덕택에 3년 전 구입했던 소형 비디오 카메라를 아직까지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다. 그 후배의 또 다른 관심은 녹음인데, 마루 한 켠에는 아담한 크기의 전문가용 스피커를 비롯한 녹음 장비들을 비치해 두고 있다. 검지손가락 크기의 마이크 한 개 가격이 1,000달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가진 다른 장비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레코딩 산업이 불황인데 클래식 음악은 어떻겠는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메이저 음반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거나 인수합병 되면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음반사는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다. 지금이야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향후 5년의 전망은 그야말로 안갯속이다. 반면 비약적인 기술 발전이 가져온 장비 가격의 하락으로 거대 장치가 아니라도 양질의 녹음이 가능해지면서 비상업적 용도의 음반은 크게 늘어 나고 있는 추세이다. 예전에는 CD를 출반했다는 것 자체가 뉴스거리가 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이슈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가들에게 있어서 녹음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마치 작가들이 책을 출판하고 화가들이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음반을 내는 것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책이나 미술 작품은 작가가 세운 틀 안에서 한치의 오차 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오롯이 담아낼 수 있고, 그 결과물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보관되거나 전승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음악가들의 예술 혼이 표현되는 장은 무대라고 할 수 있는데 실연(實演)이 벌어지는 이곳은 되돌리기가 용납되지 않는다. 실수가 생겨도 고칠 수 없고,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였다고 등돌리는 관객을 붙잡아 만족할 때까지 연주를 반복할 수도 없다. 음악가에게 무대는 달콤하지만 가혹한 곳이기도 하다. 

현대 클래식 음악 음반시장은 이미 호흡기를 뗀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연주단체와 아티스트들은 다양한 방법의 녹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옵션이 아닌 필수이기 때문이다. 거액을 들여 음반사를 사들이고 최고의 프로듀서와 PR 전문가를 고용했던 전통적인 패러다임이 아닌 다양한 방법들이 생겼다. 잘 준비된 공연실황을 녹음하고, 필요한 후반 작업만 별도 세션을 통해 녹음하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영화나 TV에서나 볼 수 있는 지미집 카메라(크레인과 같은 구조물 끝에 달린 원격조정이 가능한 고성능 카메라)를 콘서트홀에 설치하여 현장감 있는 음악회 영상을 온라인으로 공급하는 메트 오페라를 비롯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디지털 콘서트홀’과 같은 모델이 등장했다. 영상에 걸맞는 CD수준의 녹음은 필수이고 따라서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업체들의 필요가 늘어나고 있다.

녹음을 통해 음반을 내는 것은 천금같은 기회이다. 무대 위에서 일필휘지(一筆揮之)의 긴장을 벗어나 본인이 만족할 수준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시도하고 편집할 수 있는 기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음반을 통해 음악가들은 자기 자신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보상을 받는다. 문학이나 미술처럼 동등한 기회와 환경을 보장받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