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클래식에 미치다

“클래식에 미치다?”
당돌하다 못해 좀 건방지다 싶은 이 제목은 페이스북에 있는 클래식 음악 동호회 이름이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이곳의 회원수는 2015년 11월 현재 23만여 명이다. 댓글이나 좋아요(Like)로 참여한 사람의 누적수도 자그마치 1백만명에 육박한다. ‘클래식에 미치다’의 앞자를 따서 ‘클미’라 불리우는 이 페이지는 현재 순수 예술관련 블로그, 웹사이트를 포함한 온라인 커뮤니티 가운데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클미가 절대다수 일반 대중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클미가 놀랍기는 하지만 김연아 선수의 팬페이지 300만 명에 비하면 명함도 못내미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에 비해 유독 클래식 음악이 다수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장르에 비해 길이가 길다는 것이다. ‘나같이 막귀를 가진 사람은 고매한 클래식의 수준을 이해하지 못한다’ 는 말을 달고 다녔던 지인도 어쩌면 ‘길어서 지루한데 그걸 언제 듣고 앉아있느냐’는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은 길이에 질려 작품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할 기회조차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음악으로 위안을 받는데는 3분 정도면 충분하기에 그 이상 시간과 감정을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가요 100곡 가운데 1위는 故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이다. 만일 이 곡이 45분짜리로 탄생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대중음악 작곡가들의 공공연한 금기는 곡 길이가 4분이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곡 중간에 나오는 반주가 길면 안된다는 것, 그리고 멜로디나 화성이 단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일단 곡이 길면 사람들은 들으려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만일 베토벤이 35분 길이의 운명 교향곡을 3분 30초짜리로 작곡했다면 어땠을까? 단테의 ‘신곡’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일간신문 사설 읽듯 단 몇 분만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길이었다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할 수 있었을까? 

피아니스트 조성진 쇼팽 콩쿠르 우승 기념 음반이 독일의 저명한 클래식 음반사를 통해 출반된다고 발표되자 예약 주문이 폭주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유명 아이돌 가수들의 기록을 뛰어 넘었다고 하니 놀랄만한 일이다. 원래 조성진을 지켜봐왔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화제의 인물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발동으로 음반을 구입하고자 할 수도 있다. 조성진이라는 화제의 인물 때문에 40분 길이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이중에는 이 청년을 뛰어넘어 다른 클래식 음악 세계로 빠져드는 입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현상들이 반갑기 그지없다. 

어딘가에 미친다는 말이 늘 급진성을 의미하진 않는다. 죽고 못 살 정도로 강렬할 수도 있겠지만 이슬비처럼 잔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뒷통수를 얻어맞듯 단박에 알아차리기도 하지만 지리한 기다림 후에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인고의 노력으로 갖게 되기도 하지만, 대상이 운명처럼 다가와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조성진을 통해서도 좋고, 클미에 편집되어 올라오는 짤막한 클래식 영상을 뒤져봐도 좋다. 엘가가 작곡한 3분 길이의 소품, ‘사랑의 인사’같은 달달한 곡에 취미를 붙여 보는 것도 상관없다.

유명 연예인라면 모를까, 온라인상에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클미의 운영자는 대기업의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가 수천만원의 광고비를 들여 만 명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고리타분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려고 제발로 걸어 오는 사람의 수가 2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거나 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클릭 한 번으로 이탈자가 생길 수 있는 가치와 선택의 전장과도 같다. 이 공간에서 선전하고 있는 클미가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