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전통을 빛내는 올바른 방법

 

며칠 전 콜로라도의 한 사립대학 교수 A와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A교수는 지금까지 10년 정도 그 학교에 재직하면서 관련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고 학계와 동료들 사이에서 존경과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었다. 학장은 A교수가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보장해줬고 학교 외부 강연도 관대하게 허용할만큼 큰 신뢰를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학교의 총장이었다. 학자 출신이 아닌 총장은 교수들이 결정해야할 커리큘럼 디자인을 비롯한 전문분야에 관여하기 시작했고, 교직원들의 파를 갈라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학교 이사회와 교직원들 역시 총장의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학교 건물과 기숙사를 세우는 업적(?)을 올리고 있었기에 쉽사리 제동을 걸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총장은 자신의 눈 밖에 난 사람들에 대해 명분을 만들어 해고하기 시작했고, 일부 교수들은 제발로 학교를 떠나기까지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놀랍게도 그 대학의 교직원 가운데 백인이 아닌 인종은 A교수 단 한 명 뿐이었다. 이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치욕스러운 부분이다. 실제로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한 조건들을 보더라도 고용 관련 인종차별은 반드시 피해야한다. 학교가 이 지경이 된 과정에는 총장의 철학이 한 몫을 했다. 원래 미국은 백인들의 나라인데 유색인종들이 점점 자리를 잡으면서 뭔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정리해 나가다 보니 결국 한 명만 남게 되었다. 백인우월주의자인 총장이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세를 규합하여 학교를 평정하게 된 것이다. 급기야 학교 변호사는 유일한 유색인종인 A교수를 내보낼 경우 학교의 면허가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기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믿음에도 결정적인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할 때가 많다.

수 년 전 필자는 살아있는 거장으로 알려진 독일 지휘자 B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집중적으로 공부했었던 곡들은 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들의 중요한 작품들이었는데, 그런 곡들을 B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신나고 또 명예로운 일이었다. 당시 함께 했던 오케스트라 단원의 절반 정도는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계 젊은 연주자들이었다. 그런데 수업 중간 사람들의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발언을 듣게 되었다. B가 오케스트라 멤버들의 구성을 가리키며 비극적인 일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서양음악이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지금 연주하고 있는 곡들도 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인데 요즘 오케스트라를 보면 동양계 음악가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것이 비극이라는 맥락이었다. 그가 지적하려고 했던 비극론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그너(Wagner)와 브라암스(Brahms)가 유럽 음악의 전통이기 때문에 그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시대착오적 발언은 충격과도 같았다.  

요즘은 전 세계의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에 동양계 음악가가 진출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크다. 그리고 그중에는 세계 음악계를 견인하는 중요 인물들도 있다. B의 말대로 독일 사람들만이 바그너나 브라암스를 잘 부르고 제대로 연주할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은 현상적으로 볼 때도 지극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퇴보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바그너 오페라는 누가 노래하든지 상관없이 독일 작품이라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이다. 외국인 단원이 더 베토벤스럽게 연주하는 것이 비극이라니.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오히려 독일의 전통이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