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재능의 끝판왕

2014년 4월, NYCP는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미국 투어를 가졌다. 그녀는 이 연주를 위해 로마에서 뉴욕으로 날아왔다. 연주자들은 사전 리허설과 연주 기간을 포함해 열흘 정도의 스케줄을 비워야 했는데 더블베이스 연주자의 불가피한 일정 때문에 토모야 아오모리(Tomoya Aomori)라는 베이시스트를 추천 받아 함께 연주하게 되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그의 창의적인 음악성에 동료들을 배려하는 성품이 인상적었던 그는 줄리어드 음대에서 공부했고 다양한 연주 경험이 있는 베테랑 더블베이시스트였다. 현재 퀸즈 컬리지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5ths Tuning”라는 새로운 형태의 악기와 연주법을 개발하여 기존의 더블베이스보다 훨씬 민첩하고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토모야에 관해 더 많이 놀랐던 이유는 그의 재능이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였다. 첼리스트인 부인은 “토모야는 더블베이스보다 percussion(타악기)를 더 잘해요!”라고 말한다. 그는 정평이 나 있는 타악기 연주자였다. 줄리어드 음대 재학 시절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줄리어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고, 뉴욕타임스는 그를 가리켜 “환상적인 마림바 연주자”로 격찬하였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와 뉴저지 심포니의 first-call 타악기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그가 최근들어 힘을 쏟고 있는 쪽은 크로스오버이다. 클래식 음악만을 고집하지 않고 재즈와 팝, 그리고 작곡과 편곡에 이르기까지 손을 대지 않는 곳이 없다. 그가 편곡한 첼로와 피아노 타악기 그리고 더블베이스가 연주하는 파헬벨의 캐논은 지금까지 들어본 곡들 중 최고의 편곡이다. 이 곡에서 그는 피아노, 타악기 그리고 더블베이스까지 세 가지 악기를 연주한다. 그의 곡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 작품들은 5분을 넘지 않는 짧은 곡들이 대부분이고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을만큼 매력적이고 대중친화적이다. 수준급 실력의 피아노와 악기를 넘나드는 즉흥연주를 하는 그가 도전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역 남아 있을까?

1995년 메뉴힌 국제콩쿠르의 우승으로 이름이 알려졌던 율리아 피셔(Julia Fischer)는 독일 여제, 안네-소피무터(Anne-Sophie Mutter)의 왕위를 물려 받을 독일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연주자 중 한 명인 그녀가 프랑크푸르트 한 대형 극장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율리아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함께 무대에 나선 마티아스 핀쳐(Matthias Pintscher)가 지휘봉을 들자,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바이올린이 아니라 피아노였다. 그것도 그리그(Grieg) 피아노 협주곡을 말이다. 완벽에 가까운 격정적인 연주가 마무리되자 청중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쏟아냈다. 곧이어 율리아는 무대 뒤로 돌아와 그녀의 주무기를 장착하여 다시 무대로 향했다. 생상(Saint-Saëns)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관객들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2001년 베를린에서 오페라를 지휘하던 중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하여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충격으로 몰아 넣었던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Giuseppe Sinopoli)는 신경정신과 의사였다. 의대를 졸업했지만 그는 곧바로 작곡을 공부하기 위해 베니스로 향했다. 다름슈타트에서는 전자음악을 공부했다. 이후 빈에서 만난 명 교수 한스 스바로브스키(Hans Swarowsky) 와 지휘를 공부하여 결국 지휘자의 길에 오른다. 평생의 관심 분야였던 인류학, 역사학, 고고학,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풀어낸 그의 오페라 해석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음악까지 접수(?)했던 지적 재능의 끝판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