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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소리 악보에 옮긴 멘델스존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이나, 한국의 유사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는 가수 지망생들의 재능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요즘 ‘노래 좀 한다’는 학생들을 보면 단순히 기성 가수와 비슷하게 흉내내는 차원이 아니다. 수준급 실력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창법으로 노래를 풀어가는 능력으로 청중의 귀를 사로 잡는 건 기본이요, 당장 앨범에 넣어도 손색없는 자작곡을 뚝딱 만들어 내는 것 역시 이젠 흔한 일이 되었다.

모차르트(Mozart)가 음악 천재의 상징이라면, 이에 명함을 내밀만한 몇 안되는 인물 중 한 사람은 멘델스존(Mendelssoh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2세부터 14세에 걸쳐 12곡의 현악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곧이어 그의 대표작인 현악 8중주와 ‘한 여름밤의 꿈’ 서곡을 완성했다.

역사적으로 근대 서양음악 작곡가들의 삶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나마 잘 풀렸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사람들은 교회나 왕실에 고용되어 활동했고, 혹은 음악에 관심이 많은 중요 관리들이나 재력가들의 후원을 받아 음악적인 생명력을 이어갔다. 지원이 중단되어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고, 연주나 지휘를 통해 돈을 벌기도 했다. 지금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작곡가들의 거의 대부분은 그들의 뒤를 봐준(?) 후견인들이 있었기에 빛나는 예술적 소산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었다.

독일 초기 낭만주의 음악의 초석을 놓은 작곡가 중 대표주자인 멘델스존은 요즘 표현을 빌린다면 90년대 오렌지족, 오늘날의 엄친아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당대 이름을 날리며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유명 철학자였을만큼 뼈대있는 가문 출신에 손꼽히는 부를 자랑하던 배경을 가졌다. 남부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쏟아냈고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결혼한 부인과 다섯 명의 자녀를 낳아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유에서였는지 그의 음악은 대체적으로 밝고, 편안하며, 고급스럽게 발전되어 나갔다.

역사적인 기록과 오늘날의 평가를 보더라도 멘델스존은 음악의 신동이라고 말하는 모차르트 이상의 천재성을 가진 작곡가이자, 바흐(Bach)와 베토벤(Beethoven) 그리고 브라암스(Brahms)로 이어지는 독일 낭만파의 큰 흐름 가운데 베토벤과 브라암스를 연결하는 인물이다. 그의 초기 작품들을 살펴보면 곡의 구조나 형식 그리고 화성적 기법들이 책이나 연구를 통해서 습득했다기 보다는 직관적인 천재성을 통해 내면화 시켰음을 볼 수 있는 흔적들을 많다. 

반면, 브라암스는 젊은 시절 교향곡을 쓰는 것에 부담을 느끼다가 비로소 그의 나이 40이 되어서야 피아노로 먼저 작곡한 뒤, 이를 편곡하여 첫 번째 교향곡을 내놓았을만큼 신중한 편이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엘가(Elgar)의 경우도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이탈리아 오페라를 상징하는 작곡가 푸치니(Puccini)도 피아노로 곡을 구상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오페라를 써내려갔던 천재적인 인물이었다.

자신의 천재성을 바닥까지 소진하며 처절하게 작곡에 매달렸던 슈베르트에 비하면 멘델스존이 남긴 작품 수는 적은 편이다. 부모님을 따라 음악회를 갔던 꼬마 모차르트가 집으로 돌아와 들었던 음악을 악보로 옮겨 적었다는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섯 개의 교향곡을 비롯해서 실내악곡, 오페라, 협주곡, 합창곡, 성악곡, 피아노와 오르간 작품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통해 작품을 남겼다. 천상의 소리를 자신만의 밝고 유려한 음악적 언어로 써내려갔던 대체불가 작곡가였다. 그가 38세에 요절했다는 것이 안타까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